지난 23일 밤 10시 대구시 수성구 황금동의 한 오락실 앞. 영하의 강추위 속에 여성 도우미 2명이 몸을 흔들며 성인오락실 개업 홍보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대박 찬스! 스트레스를 확 날려드립니다."
구색만 갖춘 청소년용 오락기를 지나 오락실 안으로 들어가니 70여 대의 게임기가 펼쳐져 있었다. 손님들로 발디딜 틈 없었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여기저기서 한숨과 탄식, 환호성이 교차했다. '척, 척, 척...' 오락기 돌아가는 소리가 장내를 진동했다. 기자는 상품권과 현금 뭉치를 한다발 쥐고 있는 40대 남자 옆 자리에 앉아 10만 원을 넣었지만 20분도 채 되지 않아 동이 났다.
"이제 떴다, 떴어!" 옆자리의 40대 남자가 환호했다. 몇 십 초 단위로 2만 원이 계속 터지면서 15만 원어치의 상품권을 쏟아냈다. 현행법에 최고 경품액은 2만 원이고 오락기에 투입할 수 있는 돈은 1시간에 최대 9만 원으로 규정돼 있으나 베팅액, 경품액은 몇 배 부풀려져 있었다.
"며칠 전에는 33번 기계에서 220만 원짜리가 터졌는데 기계 고르기가 영 어려워." 80만 원을 넣고도 '잔챙이 밖에 안 걸렸다'는 30대 중반 남자의 손에는 20여만 원어치 상품권만 남아있었다.
성인오락실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대구에만 매달 10곳 이상의 성인오락실이 문을 여는 등 현재 1천 곳을 훌쩍 넘어섰다(그래프 참조). 전국적으로는 1만4천여 개.
얼마전만 해도 '주먹'들이 운영을 하던 것과는 달리 오랜 불경기로 사업진로를 찾기 힘든 건설·섬유업자, 식당주인 등이 개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큰 식당을 운영했다는 50대 업주는 "불경기 탓에 지난달 식당 대신 수익성이 높다는 성인오락실을 하게 됐다"며 "올초 문화관광부가 경품취급기준고시를 개정하면서 건달들을 끼지 않고 합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대로변이나 유흥업소 밀집지역 등 소위 목좋은 곳에 오락기 70, 80대 이상의 대형 성인오락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반면 주택가, 소방도로 부근에 30, 40대의 오락기로 운영되던 소형 오락실은 폐업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달 수성구의 한 나이트클럽을 개조해 오락기 150대를 갖춘 초대형점이 문을 여는 등 대형화, 기업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오락기 수명이 6개월∼1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볼 때 5억~10억 원 정도의 초기투자비용을 빨리 뽑아내야하는 업자들이 각종 변칙영업을 일삼고 있다"고 귀띔했다.
택시운전사 김모(45)씨는 "도우미들이 시끄럽게 업체를 홍보하거나 '바다이야기'라는 파란색 큰 간판이 걸리는 곳은 모두 성인오락실"이라며 "요즘들어 블럭마다 꼭 몇개 씩 있다"고 했다.
대형 성인오락실에는 수백만∼수천만 원의 뭉칫돈을 든 고객들로 문정성시다. 자영업자나 별다른 소일거리가 없는 40, 50대 실업자, 퇴직자, 주부 등이 '합법화된 도박장'에서 한탕을 노리고 있다. 포커·화투판을 전전하던 노름꾼들도 상당수 오락실로 흡수됐다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용자의 10% 정도가 본전을 찾을 뿐 대개 빈털터리로 전락하지만 '도박'으로 밤을 지새는 시민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기획탐사팀=박병선 lala@msnet.co.kr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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