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병술년 四字成語

중국 고대의 성군 중 한 명인 은(殷)나라 탕왕(湯王) 시대에 큰 가뭄이 7년이나 계속됐다. 기우제를 지내려니 살아 있는 인간 제물이 필요했다. 이를 들은 탕왕이 말했다. "기우제는 백성을 위한 것인데 이 때문에 백성을 죽일 수는 없다. 꼭히 산 제물이 필요하다면 내가 제물이 되겠다." 목욕재계 후 기우제를 지내던 왕은 문득 "가뭄이 혹 나의 부덕 때문은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왕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혹 정치가 알맞게 조절되지 않았나? 백성이 일자리를 잃었는가? 궁실이 너무 호화로운가? 여자들 치맛바람이 심한가? 뇌물이 성행하는가? 참신(讒臣; 참소를 잘 하는 신하)들이 설치는가?" 왕의 자책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난 한 해도 우리 사회에서는 소모적인 정쟁과 이념 갈등, 행정도시니 혁신도시, 방폐장 유치 등을 둘러싼 지역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빈부 양극화 현상은 더 심해졌고,'고성불패(高聲不敗)'식 목청 돋우는 이기주의가 범람했다. "너나 잘하세요"의 섬뜩한 냉소주의와 함께 모두가 남 탓하기에만 바빴다. '황우석 사태'는 우리 사회의 곪고 썩은 환부를 총체적으로 드러냈다.

○…'교수신문이' 을유년 한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상화하택(上火下澤)'을 선정한 것도 불과 물처럼 화합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를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돌아보면 '올해의 사자성어'가 나온 첫 해인 2001년엔 '오리무중(五里霧中)', 2002년 '이합집산(離合集散)', 2003년 '우왕좌왕(右往左往)', 2004년은 '당동벌이(黨同伐異)'였다. 하나같이 방향을 잃어 오락가락하고, 갈라지며, 떼지어 대립하는 부정적 이미지뿐이다.

○…다시 새해다. 우리를 가로막고 방해하던 분열과 반목, 거짓과 불신 따위의 넝마들을 미련없이 떠나보내자. 백성을 위해서라면 '나'부터 산제물이 되겠노라던 탕왕처럼 자신부터 먼저 살필 줄 아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리더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해 본다. 우리 모두 빈정거림 가득한 "너나 잘하세요"가 아니라 "내 탓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한 해 되기를…. 그래서 병술년(丙戌年) 연말에는 밝고 맑고 따스한 사자성어가 등장하여 우리 모두 눈이 둥그레져서 즐거워할 수 있기를….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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