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다시 희망의 푯대를 세우자

2006년이 밝았다. 새해 첫 태양을 마주하는 호흡마다 뜨거운 숨결이다. 부신 햇살이 그득한 얼굴마다 희망에 찬 눈빛이다. 다시 시작하는 아침, 사람들은 서로 북돋우고 새롭게 다짐한다. 희망만을 말해야 하는 오늘,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은 밝지 않다. 희망의 언어가 사뭇 공허하게 울린다. 어제까지 우리의 벅찬 희망이었던 '황우석 과학'의 추락 때문이다. 이 불모의 척박 속에 신천지를 꿈꾸던 '황우석 신화'의 몰락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국민은 공황의 심리다. 진실에 기초 않은 희망은 필연적으로 허망한 종말에 당도한다는 평범한 상식 앞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희망이 얼마나 과학적 언어이어야 하는가를 뼈저리게 깨치고 있다.

마냥 고개를 떨굴 수는 없다. 희망의 등불은 외려 낙담과 좌절을 배경으로 환하게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황우석의 등장도, 그에 대한 혹독한 검증도 모두 우리 사회가 키워온 저력이다. 역설적으로 황우석 사태는 전화위복이다. 다시 시작하라는 심기일전을 추동하고 있다. 새로운 비전을 주문하고 있다. 그래서 우직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라는 김수환 추기경의 충고는 큰 힘이다.

5월의 지방 선거는 지방자치의 여명을 연 민선 단체장 1세대를 마감한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세 번 연임을 꽉 채운 인물들이 가고 새로운 인물이 오는 세대교체의 의미다. 우리 선거 풍토는 한 번 자치단체장에 당선하면 특별한 과오가 없는 한 유리한 연임 고지를 확보한다. 이번에 누구를 뽑느냐는 것은 10년 앞까지 내다봐야 하는 중요한 결정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험난한 세계화의 격랑을 앞장서 헤쳐나갈 적임자를 지혜롭게 판단해야 한다. 따져보면 지방 선거는 각 고장의 민도(民度)를 보여주는 근린생활정치의 경연장이다. 각 고장 자존심이 걸려 있다. 반듯하고 솜씨 좋은 일꾼에게 단체장을, 지방의원을 맡겨야 한다. 자칫 잘못 뽑으면 살벌한 지방 경쟁 시대에 낙오자로 전락하는 것은 정해진 순서다.

지방 선거는 온전히 지방의 축제다. 내년 대선의 전초전으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각 정당이 대선에 몸바칠 인물로 공천하려는 움직임은 지방주민에 대한 모독이다. 중앙정치의 구호에 함몰한 선거는 지방자치의 퇴보다. 지방의 선거축제에 중앙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주민이 깨어야 한다.

올해부터 착수하는 공공기관 이전은 대구시와 경북도 전체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이전효과가 특정 지역에만 머문다면 공공기관은 오히려 화근이다. 이전기관들이 본사의 기능을 확실하게 옮겨와야 함은 물론이다. 전국 동시적인 공공기관 이전이 지자체간 수용 능력으로 비쳐진 현실에서 '살기 좋은 고장'이란 평가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요란스레 지방 시대를 얘기하지만 기실은 껍데기다. 지방자치는 여전히 중앙의 돈과 권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토 균형 발전은 허울좋은 구호일 뿐이다. 참여정부 역시 수도권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실체를 지난해 수도권 규제 완화 조치에서 생생하게 봤다. 사실 행정복합도시 건설, 공공기관 이전이 어느 정도 지방을 살찌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중앙이 기획하는 지방의 발전 전략은 정치적 가변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방의 희망은 우리 손으로 기획하고 또 찾아 나서야 한다. 우리의 주체적 역량으로 일구는 변화, 우리 문화에 뿌리를 둔 발전이라야 건실한 결실을 거둔다. 지금 세계는 지방이 국가 경쟁력의 새로운 대안임을 실증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동승해 지방 스스로 체력을 기르고 세상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세계와 소통하는 발상과 네트워크는 지금도 때가 늦었다.

올해도 보통 국민의 화두는 경제다. 우리 경제는 성장률을 5%로 잡지만 앞날은 간단치 않다. 유가'원화'금리의 '신3고(高)'에 눌려 있고, 중소기업 침체, 가계 부채 500조 원, 내수 부진에서 출발하고 있다. 빈부의 양극화, 50만 청년 실업은 사회의 건강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사실상 일할 시간이 올 1년인 노무현 정부는 딴 생각할 겨를이 있을 수 없다. 지난해에도 스스로 천명한 '경제 올인'을 저버린 노 정부다. 더더구나 선거의 해는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기 십상이다. 민생 실종을 우려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투자를 살려야 한다.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집권 성적표는 무조건 낙제다.

사회적 혼란이 걱정스런 한 해다. 해를 넘겨 소용돌이치는 사학법 갈등, 집권 여당이 고삐를 죄는 국가보안법 개폐, 사생결단이 뻔할 지방 선거는 분열과 대립의 요소다. 지난 연말 집권당 멋대로 예산안을 처리한 국회는 갈등의 진원지다. 지난해에도 숱한 이념과 이해의 대립 속에서 노무현 정권은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갈등을 양산하고 반대자에 대한 설득을 오만하게 외면했다. 명분의 우월성에 도취한 반대자 양산은 공동체의 위기를 부를 뿐이다. 이 정권 내내 상호 타협의 정치는 국민의 바람으로만 머물 것인가.

이런 기대와 우려의 교차 속에 다가오는 6월의 월드컵은 온 국민의 희망이다. 2002년 '대~한민국' 함성은 벌써부터 가슴을 방망이질하게 한다. '꿈은 이루어진다'. 우리 앞에 16강이 손짓하고 8강 4강이 대기하고 있다. 다시 희망의 푯대를 높이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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