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1월 2일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6.25전쟁에 참가한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당시 마오안잉은 28세, 소련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결혼한 지 1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신의 뜻에 따라 보낸 아들이었기에 마오 주석의 참담한 심정은 더욱 진했을 터였다.
사실 마오안잉이 전사한 것은 1950년 11월 25일이었다. 평안북도 삭주군 대유동 지원군 사령부에서 미군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
기록에 따르면 늦잠을 자 아침식사를 못해 시장기를 느낀데다 미군 전투기가 사령부 건물 위를 지나가자 사무실로 돌아갔다가 화를 당했다.
사고 당일 소식을 들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마오 주석이 충격 받을까봐 보고를 미뤘던 것.
마오의 세 아들은 모두 불운한 삶을 살았다. 맏아들이 전사한 것 외에도 둘째아들은 정신병자가 됐고, 셋째아들은 중국 국내전쟁 중에 실종됐다. 중국인의 최대 영웅이었지만 불우한 가족사의 운명을 피해갈 수는 없는 마오 주석이었다.
▲1921년 독립운동가 서재필, 워런 하딩 미국 대통령과 회견, 조선독립 후원 요청 ▲2001년 중국과 대만간 해상 직항로 분단 반세기만에 개통.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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