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마음 정리라도 해 볼 양으로 책장을 뒤지는데 맨 위 칸 구석에서 색이 조금씩 바라고 있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피터 드러커가 쓴 '프로페셔널의 조건'. 이미 가끔씩 손 가는 자리에서도 밀려난 그 책을 굳이 빼든 것은 몇 년 전 처음 읽었을 때의 마음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대개 반성과 결심을 요구하게 마련. 자기실현의 방법을 깨달아 진정한 프로가 되고 싶었던 당시의 갈망이라도 되새기면서 새해 각오를 다져보자는 마음에 이리저리 뒤적였다.
그 가운데 한 대목, '리더십의 본질'이라는 소제목이 눈을 끌었다. 리더십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드러커는 일과 책임감과 신뢰라는 세 가지를 언급했다. '올바른 지도자는 조직의 목표를 설정하고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또한 기준을 설정하고 유지하는 일을 한다. 또 리더십을 계급과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보고 자신이 모든 일의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언행을 일치하고 있다는 확신을 줌으로써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전부터 알고 있던 필요조건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이야기지만 유난히 그 내용이 와 닿았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하나 덧붙인다면 혹시 교육부의 아는 이를 만났을 때 꼭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연초에라도 마주치게 되면 덕담 삼아 "올해는 교육부의 리더십이 빛나길 기대합니다."라고 건넬 이야기로 접어 둔 셈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교육부의 리더십 부재는 리더십 부분에서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듣는 현 정부의 수준을 뛰어 넘은 지 벌써 오래전이다. 악순환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드러커가 언급한 세 가지 측면에서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 교육의 목표 설정에서부터 우선순위 결정, 기준 설정과 유지라는 일 측면에서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 평준화를 고수한다면서 학교 선택의 다양성 확대라는 명분으로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를 늘리고, 공영형 혁신학교 같은 걸 만든다고 한다.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면서 자신들이 편한 대로 세운 BK21, 의학전문대학원 같은 연구 중심 대학원, 신입생 선발 방법 등의 기준에 대학들이 따르길 강요한다. 걸핏하면 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협박을 일삼는다. 지난 연말 2008학년도 대입전형안을 발표한 서울 7개 대학은 며칠 뒤 교육부의 근엄한 걱정을 들었는데, 내신을 앞세우는 교육부 안에 알아서 맞추지 않았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를 일이다.
이런 문제들을 자신들의 성과로 삼거나, 특권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책임을 곳곳에 떠넘긴다는 사실이다. 교육부가 대학입시 제도를 3년 단위로 바꿀 때마다 학원들이 "교육부 만세"를 외치는데도 공교육 위기의 주범은 사교육이라고 떠넘긴다. 교사들이 거리로 나오면 교원단체의 불온함을 떠들고, 사립학교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부패한 사립학교 한둘을 공개해 버린다. 서울대에 일껏 지원해놓고는 서울대의 낮은 경쟁력을 구성원에게 돌리고, 대학 설립 요건을 자신들이 풀어놓고는 구조조정 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렇게 앞뒤가 다르니 교육 정책에 신뢰가 생길 리 없다.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은 정책은 말의 향연에 그칠 뿐이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 리더십의 필요성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국민이 교육부에 소리 높여 "올해 교육부의 리더십을 기대합니다."라고 새해 덕담을 건네야 할 상황일지 모른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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