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한 병실서 모녀 둘다 암투병

나는 폐암말기 환자이지만 통증을 느낄 새가 없다. 얼마나 살 수 있는지, 병의 진행상태가 어떤지도 관심 밖이다. 내 신경은 온통 암으로 쓰러진 막내딸 희승(5)이에게 쏠려 있다.

우리 모녀는 바늘과 실처럼 늘 함께 붙어 있다. 희승이는 내가 잠시라도 밖에 나가려고 하면 어딜 가느냐며 붙잡는다. 그러고 보니 그 엄마에 그 딸 아니랄까봐 머리 모양도 같다. 항암치료를 받는 탓에 둘 다 까까머리가 됐다.

부신피질악성종양. 지난해 7월 밝혀진 희승이의 병명이다. 신장 위에 있으며 생명유지에 필요한 다양한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부신 바깥쪽 부분에 암세포가 생겼다는 뜻이란다.

갑자기 다리에 굵은 털이 많이 나고 얼굴에 여드름이 나는 등 사춘기 때 보일 법한 증세가 나타나 병원을 찾았더니 내려진 진단이었다. 낯선 병명에 당황스러웠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불행은 홀로 찾아오지 않았다. 희승이가 첫 번째 종양제거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던 지난해 11월 19일, 내 몸에도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단순히 폐렴이리라고만 생각했는데….

폐암 말기 상태이고 얼마나 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진단결과를 통보받은 날은 우리 부부의 결혼 10주년 기념일이었다. 희승이 상태를 봐가며 가까운 곳에 바람이라도 쐬고 오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평소 감기도 잘 안 걸릴 정도로 건강한 나였는데 어느새 암이 이 정도까지 진행됐다니 믿을 수 없었다. 동갑내기 남편은 할말을 잃어버렸다. 밤에 잠을 깨 이부자리 옆을 보면 남편은 조용히 누워 울고 있곤 했다.

하지만 실망만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희승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희승이 옆을 지켰고 코일세척작업을 하는 남편은 힘들다 말 한마디 없이 더욱 열심히 일했다.

다행히 희승이는 잘 견뎌내고 있다. 처음 병원에 왔을 무렵 두 달 동안은 말도 안하고 사람이 곁에 오는 것도 싫어하더니 이젠 곧잘 논다. 밥도 잘 먹는다. 분홍색 환자복과 까까머리를 신경쓰지 않으면 보통 아이와 다를 바 없을 정도다. 두 차례 수술과 항암치료로 희승이 몸 안에 있던 암세포는 거의 사라졌다. 자가골수이식 수술만 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도 들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희승이 수술비다. 자가골수이식수술을 받으려면 앞으로 5천 만~7천만 원이 든다는 데 우리 형편엔 너무 큰 돈이다. 160만 원 정도인 남편의 한 달 수입으론 집에 남겨둔 두 딸과 생활하면서 희승이와 내 치료비를 대기도 벅차다.

큰딸 희정(11)이는 나 대신 제 동생 희경(9)이를 잘 챙긴다. 아침마다 머리를 땋아주고 함께 밥을 차려먹는다. 불안해서 가끔 전화라도 해서 이것저것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알아서 하고 있으니 집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한다.

내 휴대전화는 희승이 손에 쥐어져 있을 때가 더 많다. 휴대전화 버튼 1번을 꾹 누르면 남편과 연결되기 때문에 종종 전화를 걸어 제 아빠를 찾는다. '엄마 딸이 아니고 아빠 딸이야'라고 할 정도로 유독 제 아빠를 좋아한다. 희승이 전화를 받으면 남편도 힘이 나겠지. 언제쯤이면 희승이의 손을 잡고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을까.

김재옥(37·여·포항시 남구 연일읍) 씨는 폐암말기 환자답지 않게 활달하다. 희승이 앞에서는 더욱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란다.

"제 걱정은 안 해요. 주위에선 길어야 6개월 정도밖에 못 산다고 하지만 잘 버텨내고 있으니까요. 죽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희승이와 아이들을 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우리 부부의 힘만으로는 희승이를 살리기가 버겁습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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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폐암말기 환자인 김재옥 씨가 부신피질악성종양으로 투병하고 있는 막내딸 희승(5) 양을 안고 잠시 웃음짓고 있다. 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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