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신(神)의 선물

초등학교 시절 친구가 보내 온 연하장을 읽다 가슴이 찡해졌다. " '''그 옛날 네가 처음 전학왔을 때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세월은 어느새 흘러 인생의 해는 서쪽으로 더 많이 기울어졌나보다'''"

연말연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혹 바다로, 혹 산으로 갔다. 서해의 낙조를 고즈넉히 바라보며 새삼 삶의 유한함을 떠올리기도 했을 테고, 새벽 동해의 첫 일출을 벅찬 가슴으로 껴안기도 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새 해다. 서양 속담에 "삶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 뿐"이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한 가지가 빠진 것 같다. 다름아닌 "나이 먹는 것". 우리 옛말에도 "비상은 먹고 살아도 나이 먹고는 못 산다"고 했다. 극약인 비상보다도 더 먹기 싫은 것이 나이임을 말해준다. 어쨌거나 '또 한 살'의 무게가 명치끝을 묵직하게 짓누를 때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이만큼 공평한 것도 드물다. 세계 최고의 권력자나 억만장자, 깡통을 앞에 두고 엎드린 거지나 나이 앞에선 절대적으로 평등하다. 미국의 언론재벌이며 경제전문지 '포브스' 창간자인 말콤 포브스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돈의 위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상 모든 골칫거리의 99%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돈"이라고. 하지만 그토록 막강한 파워를 갖춘 돈도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게 나이다.

그러기에 한 살 더 먹었다고 애면글면 속 끓일 필요도 없는 법. 암환자들이 암과 친하게 지내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오히려 긍정적인 치료효과를 얻듯 나이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 내가 늙었을 때 난 넥타이를 던져버릴거야. 양복도 벗어던지고 아침 여섯시에 맞춰놓은 시계도 꺼버릴거야. ~해질 무렵에는 서쪽으로 갈거야. 노을이 내 딱딱한 가슴을 수 천 개의 반짝이는 조각들로 만드는 걸 느끼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제비꽃들과 함께 웃기도 할거야. ~하지만 지금부터 조금씩 연습해야 할 지도 몰라. 나를 아는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내가 늙어서 넥타이를 벗어던졌을 때 말야"(드류 레더의 시 '나 나이들면' 중)

새로운 하루는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신의 선물이라고 한다. 올해도 나날이 그 선물에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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