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학을 살리자-(2)표류하는 영남대·대구대

'주인없는 私學' …비전도 없고 추진도 못해

수만 명이 승선한 지역 주요 '사립호'는 선장도 없고,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장기 항해를 해왔다. 주변이 평온했을 때는 항해가 순탄했지만 2000년대 이후 대학 환경에 격랑이 일면서 임시이사 체제인 '사립호'는 때로 방향을 잃기도 하고, 내홍도 많이 겪었다.

2004년 기준 한국 100대 대기업 CEO 배출 6위, 장관 3명 동시 배출 등 30여 년 전 영남대 출신들의 위치와 활약상은 '한강 이남 최고 사학'이라는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잘나가던 경영, 법·행정 계열도 신입생 충원을 걱정할 판이고 합격자 1천 명 시대에 2년 연속 사법시험 2명, 행정고시는 최근 4년간 단 1명의 합격자만 배출했을 뿐이다.

권기홍 단국대 총장(전 영남대 교수)은 지방대로서 어쩔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단국대보다 영남대가 캠퍼스 환경, 물적 조건은 훨씬 뛰어나지만 입학자원과 졸업생에 대한 평가는 비교가 안 된다"고 영남대의 위상을 평가했다. 재활·특수교육 특화대학인 대구대도 강점을 살리지 못한 채 정체하고 있다.

◆발전의지도, 비전도 없는 재단

지난해 하반기 계명대는 문화산업이 강한 미국 UC 어바인 대학과 대명동캠퍼스에 공동 게임연구소를 설치하기 위해 합의를 끝낸 상태였다. 그러나 이사회가 연 3억 원에 이르는 인건비 및 운영비를 문제삼아 제동을 걸었다는 후문이다.

UC 어바인 대학은 '블리자드' 'E3' 등 세계적인 게임업체를 학내에 유치하고 있어 공동연구소가 유치됐을 경우 연구성과를 사업화하는 것은 물론 이들 업체를 대구에 유치, 지역 게임산업에 엄청난 부가효과를 가져오고 대구시의 문화산업클러스터 구상도 본격화할 수 있었다는 게 대구시의 분석이다.

정식재단이 있는 학교도 재단에 발전의지와 비전, 투자를 기대하기 어려운데 임시(관선)이사 체제인 대학의 재단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이런 사실은 재단의 재정기여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2004년을 기준으로 영남대의 경우 전체 예산 2천160억 원 가운데 재단전입금은 31억 원에 불과했다. 계명대는 예산 1천500억 원 가운데 3억 원, 대구대는 1천680억 원 가운데 1억3천만 원이었다. 이마저도 대부분 임대수익금이고 자금유치 등을 통한 지원은 전무하다. 학교운영을 사실상 학생 등록금에 모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대 한 관선이사는 "이사회에 중요한 의사결정 상황이 있어도 참석하지 못할 때가 많다. 명예직인 데다 분규를 해소하기 위한 소극적인 목적으로 앉은 임시이사와 재단이 힘도 없고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것도 우습다"고 털어놨다.

◆임시이사는 학교발전의 족쇄

예술분야 특화대학인 대구예술대는 지난해 다른 대학이 운동부를 폐지하는 추세에도 학교설립 목적과는 동떨어진 축구부를 만들고 예술과는 관계없는 학과를 2개나 신설했다.

이 대학은 지난해 학생 모집이 200여 명에 불과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임시이사들은 아랑곳 않고 일을 저질렀다. 이 대학 한 교수는 "대학발전에는 관심없이 자리만 지키는 임시이사들의 도덕적 해이와 무책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분개했다.

임시이사 체제인 대학은 구조조정도 힘겹다. 정식재단이나 설립자가 총장에 힘을 실어 주지 않는 경우 구성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면 구조조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2000년부터 6년간 영남대는 전공 및 학부조정은 있었지만 실질적인 폐과는 없었다. 계명대는 수요가 적은 야간학과와 2개 학과를 폐지했지만 근본적인 체질개선은 아니었다. 대구대도 야간 6개학과와 주간 2개 학과를 폐지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정작 필요한 구조조정은 하지 못했다.

대구대의 경우 지난해 초 직원 급여 조정과 학과 구조조정을 하려다 강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영남대의 경우 무용학과에 대해 폐과도 아니고 단지 학제조정을 하려다 한때 총장이 감금되기도 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교수들이 구조조정을 반대해 학내분쟁을 유도하고 관선이사 체제로 바꿨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또 임시이사진과 대학본부 간 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경우 심각한 내홍을 겪기도 한다. 지난해 대구대의 경우 '이사회가 단순한 학사업무까지 간섭하며 발목을 잡는다'는 본부 측과 '총장이 너무 비민주적이고 독단적이다'는 이사회가 대립하기도 했다.

학내분규가 발생한 사립대에 관선이사를 파견하는 임시이사 제도가 장기화하면서 대학운영의 정상화라는 당초 취지와 달리 학교발전의 족쇄로 작용하고 있는 사례다.지역에서는 16년째인 영남대를 비롯, 6개 대학이 임시재단으로 운영돼 전국 12개 대학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황평 영남대 교수회 의장은 "방법론상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학교발전을 위해서는 재단이 정상화 되야 한다는 데 구성원 대부분이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인 없어 분열, 파벌도 심화

정식재단이 주요 의사결정에 중심을 잡아 주는 대학과 달리 임시이사가 파견된 대학은 구성원간 분열, 갈등도 심하다. 총장직선이 가져 오는 폐해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수회, 교직원, 학생 모두가 목소리를 높여도 이를 조정·중재할 구심점이 없기 때문.

또 총장에 권한이 집중되면서 이해관계에 따라 교수는 물론 직원들도 선거운동에 깊숙이 관여한다. 선거가 끝나면 총장은 교수와 교직원에 대한 논공행상을 해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박태호 영남대 노조위원장은 "'교수 700명에 총장도 700명이다'는 우스갯소리가 학내에 돌 정도로 총장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은 각 구성원들을 배려할 수 밖에 없는 직선총장의 입장과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 하반기에 총장선거를 치른 대구대의 경우 각 세력 간, 경쟁후보 간의 골이 워낙 깊어 일부 낙선 후보들은 아직도 인정치 않으려는 분위기이고 대학 행정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

영남대는 지난 총장선거에서 학생들의 투표방해로 우편투표까지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 같은 문제점이 불거지자 영남대는 노조와 교수들이 총장선거제도개선위원회를 만들기로 합의까지 한 상태.

영남대 한 교수는 "일본에서는 각 단체가 참여하는 총장추천위원회를 통한 선출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대학 민주화 과정에서 태동한 총장직선의 문제점이 너무 커 이제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춘수기자 zapper@msnet.co.kr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 사학법 개정, 대학투자 더 힘들게…

사학법 개정으로 인해 영남대와 대구대는 재단 정상화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수년 전부터 학교 차원에서 재단 정상화 방안을 고심해 온 두 대학 관계자들은 사학법 개정 방향이 옳다고 해도 재단 정상화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요소가 더 많다고 보고 있다.

두 대학은 내부적으로 재단정상화를 위해 △시민대학 및 공익재단화(상지대 모델) △기업이나 개인에 의한 책임경영(성균관대 모델) △시·도립화(인천대 모델) 등을 연구하기도 했다.그러나 박태호 영남대 노조위원장은"새 사학법으로는 실질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막히는데 대학에 투자만 할 기업이나 기관, 개인이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황평 영남대 교수회 의장도"원칙적으로 재단 정상화에 찬성하지만 정상화를 하려면 법적으로는 구(舊)재단이 많은 역할을 하게 돼 있고 시민대학이나 공익재단화 방안도 대학이 많은 대구의 특성상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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