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경북 근대화 100년 (2)-역대 대구상의 회장

해방 이후 6·25까지 경북상공회의소 시절 회장은 초대 이종완 씨를 거쳐 2, 3대는 권연구 씨가 연임했다. 이후 공법인단체로 바뀐 뒤 여상원, 오일룡, 박윤갑, 김홍식, 박성형, 박재을, 강재조, 채병하 씨에 이어 노희찬 회장에 이르고 있다.

초대 회장을 지낸 여상원 씨는 5대까지 연임하면서 대구상의의 초석을 다졌다. 여씨는 1967년 10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구은행을 창립하는 업적을 남겼다. 1969년부터 6, 7, 8대 회장을 연임한 오일룡 씨는 대구상의의 관할구역을 달성과 칠곡, 경산 등지로 넓히고 대구상품 전시관을 만드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다.

9, 10대 회장을 역임한 박윤갑 씨는 삼성 창업주 이병철 씨 밑에서 국수공장 운영을 맡아 6·25 무렵 삼성에 엄청난 돈을 벌어다 줬으며, 회장으로 있는 동안 영국 웨스터민스터, 일본 시즈오카 상의와 자매결연을 하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쳤다.

김홍식 씨는 11, 12대 회장을 맡아 오사카 일·한친선협회와 자매결연을 하는 등 한·일 관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금복주를 창업한 김씨는 상의회장에 이어 대구시의회 의장을 맡기도 했다.

13대 박성형 씨는 대동은행과 동양투자신탁 등 지역 금융기관을 설립하는 큰 일을 해냈고, 14대 박재을 씨는 지난 91년 5월 회장으로 선출된 뒤 3개월여 만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상의 사무국 업무를 개혁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박씨의 못다한 임기는 그해 8월 다시 선출된 강재조 씨에 의해 승계됐다. 강씨는 92년부터 삼성자동차 유치활동을 본격 전개, 삼성상용차가 대구에 터를 잡는 기반을 닦았다.

15, 16대 회장을 연임한 채병하 씨는 무역센터 설립, 대구~포항 고속도로 건설, 위천국가공단 지정추진 등 굵직한 성과를 올렸다. IMF를 맞아 지역기업들이 워크아웃 등으로 넘어갈 때 중앙무대를 넘나들며 떠받쳐준 공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01년 17대 회장에 선출된 뒤 현재까지 2기째 연임하고 있는 노희찬 회장은 경선을 통한 회장 선출 과정에서 일어난 지역 경제계의 반목과 갈등을 해결하고 화합과 단결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국내 최초의 시민 구단인 대구FC 창단과 대구경북디자인센터 설립을 추진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다.

한편 노희찬 현 회장이 올해 임기가 끝난 뒤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대구상의 100주년 첫 회장에 누가 선출될지에 지역 경제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모현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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