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어떤 이혼소송

지난해 가을부터 경남 거창을 자주 찾았다. 거창법원에 이혼소송이 있어서 한 달에 한번 꼴은 다닌 셈이다. 이혼소송이라는 것이 그렇다. 침소봉대(針小棒大)는 말할 것도 없고, 거짓 주장과 진실 감추기가 다른 소송에 비해 훨씬 많은 편이다.

내가 변론을 맡은 이혼소송의 의뢰인 남자는 대구법원에서 피고인 신분으로 형사사건도 진행되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형사사건으로 구속된 상태여서 내가 한 주에 한 번 구치소로 면회를 갔다.

그는 이혼을 하면서도 재산은 독차지하려 했다. 재산을 양보하면 형사사건 형량도 낮아진다고 누차 설명을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설상가상으로 이혼소송의 상대방 여자는 '따발총'이었다. 형사사건에도 미주알고주알 참견을 했고, 이혼소송에서도 할 말은 다 했다.

아무리 변호사이지만 이런 재판은 정말 싫었다. 그렇게 이혼재판을 힘겹게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런저런 복잡한 상념들을 떨쳐버리기 위해 일부러 고속도로가 아닌 시골길을 택했다.

새삼 차창 밖 산천에 눈을 돌리고 보니 그동안 울긋불긋 낙엽을 두르고 섰던 가로수들이 나목(裸木)이 되어 있었다. 벌거벗은 나무의 이미지와 거창(居昌)이란 지명의 '거'(居) 자에서 나는 문득 '살아서 진천, 죽어서 용인'(生居鎭川 死去龍仁)이라는 옛말이 떠올랐다.

이름과 나이가 똑같은 사람이 우연히 한 날 한 시에 죽었다가 한 사람이 되돌아와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되살아나는 바람에, 살아서는 진천 가족으로 죽어서는 용인 사람으로 묻혔다는 얘기.

정말 그런 기막힌 사연도 있을까. 이혼한 그 부부는 어떤 인연이었을까. 산세가 수려한 거창을 지나 가야산, 매화산 자락을 타고 굽이굽이 대구로 오는 길. 합천댐 겨울 호수가 유난히 시렸다.

신태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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