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성문학 겨울호 지역문인 첫사랑 특집

'비터스위트(bittersweet).'

첫사랑의 아련한 감미로움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한마디로 엮어 서양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추억 같은 것이 입 속에 맴돌다 마는 그런 감흥. 사춘기의 홀연한 바람처럼 사그라졌든,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 먹먹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든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게 마련이다.

또래의 이성일 수도 있고, 선생님일 수도 있고, 이름 모를 소년·소녀일 수도 있다. 첫사랑은 그 대상이 다양한 만큼 사랑의 방정식도 가지가지이다. 어떤 사랑이든 그 사랑은 첫사랑 같다고 본다면 우리는 아마도 평생을 수많은 첫사랑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계성문학 올 겨울호가 '첫사랑'이 주제인 기획특집을 마련해 지역 문인들의 글을 실었다. 소설가 송일호 씨는 "여자는 첫사랑을 기억에 남기고,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남긴다"고 했다. 송씨는 아름다운 시절 하얀 얼굴에 단정한 교복 차림의 여학생을 떠올렸다.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그리움은 30년의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았고, 뜻밖의 재회에서 첫사랑 여학생은 아직도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는 애틋한 사연이다. 수필가 이재호 씨는 초등학교 시절 예쁜 얼굴에 하얀 블라우스와 빨간 스웨터를 입었던 여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바래지 않는 사진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학생들에게 피난길 주의사항을 울음 섞인 목소리로 들려주며 "꼭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다짐하던 선생님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고, 43년 만에 찾은 모교의 창문에는 그날처럼 빗물만 가득 고여 있었다.

김몽선 시인은 '사랑의 무게'란 글에서 고교시절의 쌍무지개 뜨는 첫사랑을 떠올렸다. 애타는 그리움과 주체할 수 없는 설렘으로 자리했던 첫사랑이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먼 먼 그날의 아리따웠던 그녀는 달콤하고 화사한 수채화 한 폭을 가슴에 그려놓았다.

수필가 정휘창 씨는 '떠오르는 그 얼굴'이란 초대작품에서 일제시대 말기 초등학교 등급생이었던 니시무라(西村) 교장의 딸 미에코(實惠子)를 떠올렸다. 6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에 어리는 그녀의 얼굴. 발갛게 상기되어 눈물이 번지던 그 얼굴. 고향이 시마네현이라고 했다.

강초선 시인은 '나무와 물'의 사랑과 이별을 소재로 한 동화적인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무상(無常)을 토로하고 있다. 원래가 없는 마음자리를 두고서 다들 제멋대로 모양과 색깔과 무늬를 만들어놓고는 맞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눈물을 찔끔거리며 슬퍼하는 일들을….

이 밖에도 김세현 시인은 친구의 애인과 '오기로 해버린 첫 키스 '의 아련한 추억을 회고했고, 박지영 시인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아버지 사랑이 그 사람에게 전이된 것임을 알았다"고 고백했다.

아동문학가 최춘해 씨는 아동문학과의 첫 인연을, 문무학 시인은 '시조'라는 이름의 '그 여자'를 첫사랑으로 변주했다. 시인은 그러나 '그 여자' 곁에서 얼씬거리고 집적대며 그렇게 산 지가 어언 스무 해가 되었지만, 그 여자의 속살 한 번 보지 못했다고 자탄한다.

'바람으로도 가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그대 있네/ 홍수로도 덮칠 수 없는 먼 곳에 그대 있네/ 불로도 타오르지 못할 깊은 곳에 그대 있네' '시조' 전문.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