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쉬리'가 등장할 때만해도 영화에서 남북의 분단 현실을 다루는 것은 대단히 민감한 문제였다. 그러나 2006년 현재 분단은 더이상 특이한 소재가 아니다. 그 사이 줄잡아 10여편의 영화가 분단 현실을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영화에서 분단은 역사이자 현재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을 바탕으로 문예물이나 반공물 위주에서 벗어나 변주를 거듭하고 있다. 이를 통해 관객 1천만 시대도 열어젖혔다.
연말에 선보인 곽경택 감독의 대작 '태풍'에 이어, 막바지 촬영 중인 안판석 감독의 '국경의 남쪽' 등 영화계에서 분단이 활발하게 세포 증식 중이다.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살펴봤다.
◇스릴러에서 코미디까지
분단은 스릴러, 액션, 휴먼 드라마, 코미디,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형태로 스크린 속에 펼쳐졌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는 냉전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다루며 그 속에 액션과 멜로를 가미해 흥행에 성공했다. 이어 2000년에 등장한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는 관객의 허를 찌르는 감동을 전해줬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교육을 받은 관객에게 남과 북의 병사가 소통하는 모습은 일종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사이 장진 감독은 '간첩 리철진'을 통해 북한의 식량난으로 벌어지는 엉뚱한 상황을 코믹하게 그려냈고, 이러한 코믹한 시선은 이후 '동해물과 백두산이' '그녀를 모르면 간첩' 등을 거쳐 2005년 '간 큰 가족'을 통해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갖춘다.
'간 큰 가족'에서 주인공들은 통일이 되면 수십억대의 유산을 상속해주겠다는 실향민 아버지의 말에 총력을 기울여 '통일 사기극'을 벌인다. 실향민의 애달픈 심정과 통일이 됐을 때의 혼란이 위트 넘치는 에피소드와 버무러져 따뜻하게 전해졌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 최초로 북한 지역(금강산 온정각 일대) 촬영에 성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분단은 관객 1천만 시대를 열기도 했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2004년 차례로 전국 1천만 관객을 모으며 '국민영화'로 떠올랐다.
강우석 감독은 '실미도'를 통해 베일에 싸여 있던 북파간첩의 모습을 조명해 영화를 넘어 사회적인 이슈화를 이끌어냈고, 강제규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한국전쟁의 비극적 상황에 형제애를 녹여내 감동을 전해줬다.
그 바통을 이어 2005년에 등장한 '웰컴 투 동막골'과 '태풍'은 분단 소재에 영화적 상상력을 폭넓게 가미해 눈길을 끌었다. '웰컴 투 동막골'은 반전 사상과 함께 진한 휴머니즘을 전파했으며, '태풍'은 분단을 할리우드형 액션 블록버스터의 소재로 녹여냈다.
◇철저한 고증 거쳐 평양 풍경 재현
이달 말 크랭크 업 예정인 차승원 주연의 '국경의 남쪽'(제작 싸이더스FNH)은 멜로 영화다. 북쪽에 애인 연화(조이진 분)를 두고 홀로 남으로 넘어와야 했던 선호(차승원)는 애인의 결혼 소식을 듣고 남쪽 여인 경주(심혜진)와 결혼한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연화가 오직 선호를 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남으로 내려온다.
제작진은 선호가 국경을 넘어오기 전까지 평양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담기 위해 철저한 고증을 통해 평양 풍경을 재현했다고 밝혔다.
총제작비 70억원이 투입된 이 영화는 그중 15억원을 평양 풍경 재현에 썼다. 제작진은 "전국 방방곡곡을 뒤져 북한과 가장 유사한 풍경을 찾아냈고, 평양 시가지는 대규모 세트에 CG를 더해서 재현된다"고 밝혔다.
평양 개선문 광장에서 열리는 '4·15 태양절 경축 무도회' 장면을 위해서는 중국에서 공수한 천여벌의 의상과 소품이 동원됐고, 평양대극장에서 펼쳐지는 '당의 참된 딸' 공연과 함께 보통강 보트장, 대성산 유원지, 평양제일 냉면집 옥류관 등 평양의 모습이 크게 다섯 장면으로 재현된다.
제작진은 애초 '간 큰 가족'처럼 실제 북한 촬영을 기대했다. 그러나 '탈북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끝내 허가가 나지 않아 합성을 위한 평양 시가지 장면 촬영조차 불허됐다.
◇분단, 영화를 통해 대중 속으로
민족의 아픈 현실이 영화의 매력적인 소재가 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대중과 소통하는 상업영화는 분단과 통일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힘을 과시하고 있다.
실제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은 점점 무뎌져가는 분단 현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이는 '공동경비구역 JSA'나 '웰컴 투 동막골' 등의 경우 홈페이지에 올라온 젊은 관객의 감상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은 세대간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앞으로도 이어질 이들 분단 소재 영화들의 순기능을 기대해본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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