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 시평-과메기가 주는 교훈

삼한사온(三寒四溫)은 간데없고 혹한만 이어지는 올 겨울 날씨 덕에 동해안에서는 과메기가 대박을 터뜨렸다. 원재료인 꽁치가 결코 고급어종이 아니듯 날생선을 바람그늘에 며칠 내걸어 두었다가 손으로 껍질을 벗겨 먹는 모양새까지, 과메기는 '어획-선별-세척-건조'발효-섭취'에 이르는 어느 한 과정도 고급스런 맛이 없다. 다만 지극히 서민적인 탓에 과메기는 아주 이른 시간에 국민식품으로 자리잡았다.

마침내 내로라하는 서울의 고급 일식집 메뉴판에도 계절 특별식으로 과메기가 올라 있을 정도다. 지역 경제인들은 "골프접대로도 풀리지 않던 어려운 일들이 과메기 한 두름에 소주 두어 병 돌리면 척척 풀리니 이만한 효자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 포항에서도 귀하다는 본산(本山) 구룡포(九龍浦) 과메기의 '짝퉁'이 전국에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품질에 큰 차이가 없다면 이 정도쯤은 상호(商號)나 품명(品名)의 공유(共有) 정도로 생각하고 굳이 원산지 표시제를 따질 일은 아닐 듯싶다. 과메기집에 손님을 빼앗긴 고깃집과 고급 술집 주인들이 빨리 겨울철이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쇠고기와 룸살롱, 골프를 누른 꽁치가 새삼 위대하게 보인다.

한편 논란 속에 작년 11월 2일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이 주민투표를 통해 경주 양북면에 유치됐다. 최악의 혐오시설이라며 결사반대했던 것이 불과 2, 3년 전의 일이고 보면 방폐장 유치전은 한편의 반전(反轉)드라마였다. 경주는 방폐장 유치를 통해 많은 경제적 부가혜택을 누리게 됐고 양성자가속기 건설과 한수원 본사 이전 및 반입수수료 수입 등을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동시에 경주는 울진-영덕-포항-경주-울산으로 이어지는 민(民)'학(學)'산(産)'관(官)이 융합하는 새로운 산업벨트의 핵심으로서의 역할이 기대된다.

다만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방폐장 등을 둘러싼 지역이기(地域利己)와 일부의 계층이기(階層利己)에서 비롯되는 축소지향적 사고(思考)다. 물론 유치과정에서 들인 공이나 특정 시설 입지에 따른 환경피해 등 노력이나 고통에 따른 보상은 당연히 해당 지역의 전유물이 되어야 하겠지만 파이(π)를 키워 파생효과를 증강시키려는 노력보다는 '내 동네 시설에서 얻어진 이익의 몇 %를 내 동네에 정착시켰다'는 공치사를 위해 경계를 짓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주 방폐장과 한수원 본사 및 양성자가속기 등이 경북 동해안 경제권과 울산을 포함한 이 일대 최소 200만 명 주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싹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최근 동해안 경제개발 관련 논의의 핵심은 동해에 어깨를 맞대고 있는 지역간 연대강화다. 포항'동해(강원도)-울릉도-독도 간 여객선 취항, 부산-울산-포항-속초-청진--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상설 항로 개설, 영일만항(포항),울산항, 동해항의 자유무역지대화를 통한 물류통상 거점화가 그 예다. 참으로 타당하고 시기적절한 논의다. 특히 자유무역지대 조성은 신항(부산, 경남권), 광양항 등과 연결할 수 있는 성장거점으로 대구'대전' 수도권 지역의 동반 성장을 유도하는 효과 또한 클 것으로 전망된다.

필자는 바닷가에서 평생을 살면서 수산관련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자연산과 양식회 맛을 구분할 줄 모른다. 과메기 또한 무척 즐기는 데도 원산지까지 알아내지 못하고 대게도 어떤 게 영덕게인지, 구룡포게인지, 울진'울산게인지도 구분할 도리를 갖지 못했다. 하나같이 맛난 향토산이기 때문이리라. 원산지 증명과 상표권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마땅하고 기본적인 상도덕이지만 이것이 지역 간 업체 간 단절과 적대시를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물며 그것이 미래 국가성장동력과 관계된 것이라면 소재지역을 따지거나 권역을 따질 것은 절대 못된다. 국가적으로 생각하고 범국민적으로 정책하는 광범위의 사고가 요구될 뿐이다. 과메기와 대게를 공유하며 올겨울 대박신화를 터뜨린 동해안 주민들에게서 협력과 경쟁, 상생이라는 큰 틀의 경제원칙을 새삼 배우고 있다.

최무도 포항상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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