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걷고 싶은 대구' 만들자

자가용 이용률 전국 최고…승용차 내려 고작 50m 보행

대구 사람들이 전국에서 가장 적게 걷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대비 자가용족(族)' 비율도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전문가들은 세계 선진도시 사람들이 '걷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며 대구시도 보행환경을 시급히 정비, 새해엔 '걷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안 걷는다= 2004년말 현재 대구(인구 252만 명)의 자가용 승용차 수송분담률은 36.7%. 인천(인구 261만 명) 38.9%에 이어 전국 7대 도시 중 2위를 기록했다(건설교통부 집계). 하지만 인천 인구가 대구를 추월한 것을 감안하면 인구 대비 자가용 수송 분담률은 대구가 사실상 전국 최고 수준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해 10월 지하철 2호선 개통 당시 승객 유발 효과를 하루 20만 명 선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는 10만 명 선에 그쳤다. 대구지하철공사 박동욱 기획처장은 "가장 큰 원인은 걷지 않기 때문"이라며 "대구는 출퇴근 때 승용차 이용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라고 말했다.

대구지하철공사가 지난달 5일부터 9일까지 등하교 시간대 중·고·대학생의 지하철 1, 2호선 이용률을 조사한 결과, 하교시간대(7만1천371명)가 등교시간대(6만1천656명)보다 9천715명(15.8%)이나 이용자가 더 많았다.

지하철공사 김제봉 팀장은 "출근하는 부모들이 중·고교 자녀를 승용차에 태워 통학시켜 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영남대 김갑수 교수(교통공학)는 "서울 등 다른 대도시는 승용차에서 내려 목적지 문앞까지 가는데 수백m를 걷지만 대구는 고작 50여m를 걷는다는 조사결과도 있다"며 "목적지 바로 코앞까지 차를 몰고가려는 경향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왜 그런가= 지난 9일 대구 북구 산격로(대도시장 삼거리~산격초교 네거리). 주변 1km를 20분쯤 걸어봤더니 열악한 보행환경이 온몸에 느껴졌다. 왕복 2차로엔 보도가 없었다. 1km 구간엔 4개 노선의 4개 버스 승강장이 있고 버스와 일반 차량이 뒤엉키면 한동안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같은 날 수성구 파동 애망원 주변(용두교~법왕사 입구) 일대 1km 구간. 역시 걷기가 무서웠다. 차도 폭이 5m에 불과한데도 왕복 2차로로 이용되고 있었다. 수성중학교와 파동초교 및 애망원이 위치, 보행자가 많지만 보도는 없었다. 신천대로가 끝나는 상동교 일대, 가창 방면 및 지산범물, 파동으로 이동하는 차량들이 급증하면서 이곳 보행 환경은 악화일로다.

대구시는 2003년 보행환경개선 기본계획을 세웠다. 당시 보행환경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 역내 도로들은 모두 71곳. 간선, 보조, 국지도로 25곳, 학교 통학로 13곳, 버스 및 지하철 연계도로 9곳, 상가 밀집지역 도로 12곳, 산책로 4곳 등이었다. 개선 사업비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335억 원으로 계획됐다.

계획대로라면 내년엔 다 고쳐져야 한다. 하지만 재정을 확보하지 못한 대구시는 지난해야 겨우 사업을 시작했다. 아직 2곳밖에 고치지 못했다. 더욱이 대구시는 중구 반월당네거리 횡단보도(적십자사~2호선 지하상가 출입구)를 없애버렸다. 없앤 횡단보도를 다시 복원, 걷는 거리를 만들어야 할 판에 있던 횡단보도까지 없앤 것이다. 이런 환경이 대구시민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다.

◆어떻게 바꿀까= '걷고 싶은 도시'는 전세계적 화두. 유럽의회는 이미 20세기말 보행자 헌장을 선포했다. 영국은 1996년 보행 활성화 전략개발에 돌입했고 미국 메사추세츠 주는 도시, 교외, 지방에 이르는 보행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독일은 1천 개가 넘는 보행자지구를 도심에 설치했다. 프랑스 상제리제는 자동차와 불법 주차에 짓밟히다 상제리제 거리 기본계획 수립을 통해 걷는 도시로 새롭게 태어났다.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시는 '마이애미 21' 플랜을 내놨다. 이 계획의 핵심은 신개념 건축법을 도입하는 것. 도로 개설을 최대한 억제하고 기존 자투리땅은 쌈지공원이나 가로공원으로 활용하는 프로젝트다. 서울은 지난해 말 청계천 복원에 맞춰 광화문 네거리와 시청 뒷길의 보행 환경을 통째로 바꿨다. 보도폭을 2~4m씩 넓혔고 육교, 지하도로 자리에 횡단보도를 신설해 시민들의 보행권을 강화했다.

전문가들은 "대구시가 지난해 처음으로 보행환경개선위원회를 발족한 것은 고무적이지만 자치구 차원에서 보행전담 기구를 운영하는 서울, 부산과 비교하면 한발 뒤처져 있다"며 "교통과 도시개발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의 전담기구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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