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대구초교와 달성의 현풍초교, 대구 계성중·고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다. 대구지역에 근대 신학문의 기틀이 마련된 지 1세기가 흐른 것. 특히 계성중·고는 영남지역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으로 출발, 대구·경북의 3·1 만세운동과 개화기 신학문을 주도하는 등 역사의 중심에서 근대사의 흐름을 선도해 왔다. 계성의 100년 역사를 통해 지나간 세기의 교육을 짚어보고, 새로운 교육의 미래를 내다봤다.
▲근대사와 함께한 계성 100년
"동포들아, 오늘부터 우리는 독립이다. 다 함께 뭉쳐라!" 우렁찬 학생들의 목소리에 큰장(서문시장)의 장꾼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만세대열에 합류했다.
1919년 3월 8일, 한반도를 휩쓸었던 만세운동의 불길이 대구에서도 점화됐다. 이 중심에는 계성학교가 있었다. 당시 교감이었던 김영서 씨와 최경학, 최상원 교사는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는 지역의 기독교 인사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의견을 모으고 학생들과 함께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갔던 것.
지금도 남아있는 계성학교 아담스관 지하는 등사실로 활용됐다. 정인표(56) 교장은 "지금도 아담스관을 바라볼 때면 만세운동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며 "당시 계성학교 학생들은 독립선언문을 등사하고, 태극기를 만드는 등 적극 가담해 전교생 46명 대부분이 일제에 검거됐었다"고 설명했다.
영남지역 최초의 중등교육 기관인 계성고는 지난 1906년 개교, 오는 10월 15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다. 초대 교장인 안의와(한국명, James E Adams) 선교사가 '인외상제 지지본(寅畏上帝智之本.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니라. 잠언 1장 7절)'을 교훈으로 학교를 세운 이래 지금까지 6만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명실공히 전국 최고의 명문 사학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인재양성의 중심
계성 출신의 명사들은 문화예술계, 법조계, 학계, 정치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 포진해 있다. 박목월(시인·23회), 김동리(소설가·21회), 김성도(아동문학가·21회), 박태준(작곡가·5회), 현제명(작곡가·8회) 선생 등이 계성을 거쳐 갔으며 조선 신극의 선구자인 홍해성(연극인·18회), '임자 없는 나룻배'의 감독인 이규환(9회) 선생도 이 학교 출신이다.
또 박해달 미국 윌슨국제연구소 고문, 박준환 사우스베일로 대학교 총장, 이종진 미 엘라이드 시그널사 부사장 및 한국 지사장 등과 같이 계성의 인물들은 해외로까지 그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또 김용태 전 국회의원을 비롯해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 수석, 김대환 노동부 장관,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의 정계 인사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특히 한국 유도는 계성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안병근(68회), 이경근(68회), 김재엽(70회) 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만 3명.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85년에는 전국의 고등학교로는 유일하게 대통령 학교 표창을 수상, 계성의 교기에 대통령 수치가 달리기도 했다. 정 교장은 "체육 활동을 통한 국위선양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은 대통령 수치는 학교의 보물"이라며 "계성고 유도부는 1981년부터 1983년까지 3년간 총 18연승을 기록하며 각종 대회를 휩쓴 전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고 자랑을 늘어놨다.
▲100년의 역사를 뛰어넘어 미래로
이제 계성고는 100주년을 기점으로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는 동창회와 재단, 학생들까지 한데 힘을 모아 계성의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쓰기 위한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는 것.
100주년 기념행사도 대대적으로 개최한다. 계성발전세미나, 3·1 만세운동 재현, 3·1운동 기념비 건립, 100주년 기념 상징탑 제작, 100주년 기념 체육대회, 100주년 기념 대수양회 등 40여 개의 행사가 1년 내내 계속될 예정이다.
당초 계성고는 대구 서구 상리동으로 학교를 이전, 100주년을 새 교사에서 맞이할 계획을 세웠었지만 고도제한 등 일부 걸림돌이 생기면서 계획이 일부 연기된 상태다.
김재현 교감(59회)은 "평준화 이후 계성고에 진학하기를 원하는 우수한 인재들이 있어도 배정 원칙에 부딪혀 뜻대로 진학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예전보다 사실상 학교의 위상이 위축된 것은 사실"이라 말했다. 그는 또한 "하지만 든든한 동문 선배들이 재학생들의 뒤를 받쳐주고 있어 자립형 사립고 전환과 장학재단 설립, 각종 해외연수 프로그램 등을 통해 다시 한번 대구·경북은 물론 전국의 최고 명문 사학으로의 입지를 굳힐 것"이라 밝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 1908년 3월 30일 준공되었으며 계성학교를 세운 안의와 선교사의 어머니의 이름을 따 아담스 홀이라 이름붙였다. 영남 최초의 신식 2층 건물로 건축에는 대구성의 석재들이 이용됐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이곳에서 등사하기도 한 역사적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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