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업·집안 대소사 한자로 간략 메모

김만현씨 일기장에는…

'1979년 10월 27일.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다. 박 대통령의 죽음은 마치 온 국민의 아버지의 죽음처럼 느껴졌다.'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날을 떠올려 살펴본 김만현(74·대구시 수성구 수성4가) 씨의 일기장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김씨는 1968년 1월 1일부터 36년 동안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일기를 써오고 있다.

김씨의 거실 탁자 위에는 5, 6년짜리 다이어리, 나의 십년기(十年記) 등 예닐곱 권의 일기장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낡은 일기장들은 집안의 소소한 일과 개인적인 추억 등 결혼 이후 한 개인의 삶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적어두지 않으면 두발을 뻗고 잘 수가 없습니다."

영어, 일본어뿐 아니라 한문에도 능통한 그는 주로 한자로 그날의 일들을 아주 간락하게 메모하는 방식으로 일기를 쓴다. 물론 집을 계약하거나 사업상 중요한 결정 등도 빠트리지 않는다. 소소한 일이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일들도 써놓는다. 다른 사람들이 봐서 곤란하거나 부끄러운 기억들은 본인만 알 수 있는 암호로 써놨다.

'나의 십년기'란 일기장을 펼쳐 보면 양쪽 면이 빼곡하다. 한 페이지에 열흘치 일기가 순서대로 기록돼 있기 때문. 그래서 그의 지난 36년은 일기장만 펼쳐 보면 훤히 들어온다. 아내가 '둘째 아이가 어렸을 때 달성공원에 놀러간 게 언제였더라?'하고 물으면 일기장을 뒤적거려 1분도 안돼 연도와 일시까지 들먹이며 기억을 되살려준다.

노태우 전 대통령, 정호용 전 육군참모총장과 동기이기도 한 그는 노 전 대통령의 환갑잔치 때 청와대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도 일기장에 적어놨다.

36년 간의 세월만큼이나 일기를 통해 본 그의 삶에도 변화가 많았다. 1972년에는 대구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직접 운영했으며 1978년부터는 약 15년간 대구 동구 팔공산에서 소 100마리를 사서 뉴질랜드식 방목을 해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완벽주의', '꼼꼼함' 때문에 일기를 쓰거나 메모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는 그는 "이런 성격 때문에 일기를 쓰는 것이 생의 큰 즐거움이자 일상사가 됐다"고 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 김만현 씨가 자신의 집 거실에서 36년 간 써 온 일기장들을 펼쳐보고 있다. 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