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집. 팔공산 순환도로 인근에 자리한 서양화가 문상직(59·대구시 동구 신무동) 씨의 전원주택은 찾아가는 길부터 즐겁다. 봄이면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이, 가을에는 색색별로 고운 단풍이 반겨주는 곳. 여름에는 열대야를 피해, 겨울에는 눈 구경을 하러 사람들이 찾는 팔공산 기슭 호젓한 자리에 그의 집이 있다.
"이천동에서 이곳으로 온 지 4년 정도 됐습니다. 아내에게 작업실을 지어 같이 가겠느냐고 물으니 주방과 화장실을 편리하게 해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는 집터를 보지도 않고 사들였다고 한다. 예전에 와촌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릴 때 팔공산 순환도로를 수시로 지나다니며 좋은 터라고 마음에 두었던 곳이기 때문이란다. 작업실 터를 잡으려고 청도, 성주, 보은 등지까지 다녔던 그는 대구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전원에 사는 즐거움을 흠뻑 느낄 수 있어 더없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대지 300평에 1, 2층 각각 48평 정도 되는 적벽돌 집. 그리 화려해 보일 것 없이 화가 부부가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며 자연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실용적인 생활공간으로 지어졌다.
"외부 설계는 전문가에게 맡겼지만, 1층 아내의 공간·손님방, 2층 작업실 등은 모두 아내가 설계했습니다. 집에서 많이 생활하는 주부가 살기 편리하게끔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게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는 아내를 '맹이'라고 부른다. 키가 작다고 '꼬맹이'를 줄여 이렇게 부른단다. 이제껏 부부싸움을 한 일이 없다는 그와 아내 박영희(55) 씨는 화선지에 절로 물이 스미듯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부부로 보였다. 지금까지 남편의 전시회에 단 한 번, 그것도 남에게 이끌려 참석했을 뿐인 아내.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작업실 네 면을 커다란 유리창으로 설계해 사계절 자연의 풍광을 느끼고, 계단으로 옮기기 힘든 1500호 대형 작품도 작업실에서 바로 창문 밖으로 옮길 수 있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 화가의 아내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향으로 따뜻한 햇볕이 잘 드는 1층 거실 바닥에 편안히 앉아 밖을 바라보면 멀리 첩첩이 쌓여있는 산세가 기가 막히다. 그가 '양' 시리즈에서 황혼녘인 듯, 새벽의 안개 속인 듯 신비롭게 그려내는 후경(後景)의 산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산세와 많이 닮은 것 같다.
집 뒤 정원으로 나가면 감나무에 발갛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새들의 먹이로 넉넉하게 남겨둔 감은 겨울에도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어 한 개씩 따먹으면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차고 단 맛이 별미였다. 매실·살구·대추·자두·배·호두나무 등을 두 그루씩 심어놓은 정원은 처음에는 텃밭 위주로 돼 있었다고 한다.
"집 옆으로 흐르는 개울 버드나무 밑에서 차 마시는 걸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작은 연못과 앉아 쉴 수 있는 자리도 만들다 보니 정원이 차차 넓어지게 됐지요."
아직 추운 겨울인데도 정원에 심겨져 있는 매화나무에서는 벌써 새순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고 집 앞으로 노루, 족제비 등이 뛰어다니는 자연에서 화가 부부의 삶은 더없이 풍요로워 보였다.
◇ point-집 뒤에 정원…남의 눈 벗어나 좋아요
문상직 화가의 집은 여느 전원주택과 다른 점이 정원과 텃밭의 배치였다. 대부분 전원주택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넓은 정원이 먼저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문씨의 집은 대문을 열면 집이 먼저 보이고 집 뒤로 정원이 배치돼 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정원이 아니라 집에 사는 사람이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생활공간으로 정원을 생각하고 있는 점이 달랐다.
"정원이 집 뒤에 있으니 차를 마실 때 등 남의 눈을 의식할 필요 없이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수 있어 좋습니다."남의 눈을 의식해 화려하게 짓는 전원주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문씨는 전원에서 살려면 창고가 많아야 한다며 창고를 바깥쪽으로 두고 그 안쪽에 방, 욕실 등을 배치하면 겨울 추위를 걱정할 필요 없이 보온효과도 높다고 했다.
글·김영수기자 stella@msnet.co.kr
사진·정재호편집위원 newj@msnet.co.kr
사진: 1. 문상직씨 주택 전경 2. 커다란 유리창으로 채광이 좋고 바깥 경치가 잘 보이는 2층 작업실 3. 거실에서 바라본 전경 4. 개울을 보며 차 마시는 걸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만든 작은 연못과 온갖 과일나무가 심겨 있는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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