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 나라의 시선이 황우석 교수의 일거수 일투족에 쏠려 있다. 그는 대통령 못지않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죽하면 5공 시절의 유명한 땡전 뉴스 대신 '땡황' 뉴스라는 말이 생겼을까. 그에게 학자로서의 최고 훈장을 비롯해 엄청난 연구비 지원을 앞다퉈 제공했을 뿐 아니라 '최고과학자' 제1호라는 칭호에 경호원까지 딸려 교수로서는 전무후무한 대우를 받아왔다. 심지어 노벨상 추진위원회까지 생각한 모양이다.
황 교수가 그동안 누려온 화려한 대우를 시기하거나 부러워하기에 앞서 필자는 우리 사회 거의 모든 영역이 반이성적으로 이번 사태를 키워온 것임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함께 반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말은 언제나 진리다. 벽돌을 쌓듯 하나하나 차곡차곡 꾸준히 쌓아 올라가는 수도자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학자이다. 특히 자료를 다루는 과학에서는 도약이나 비약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주변 과학이 발전하는데 따라 함께 서서히 전진하는 것이 자료과학이다. 우리는 학문이나 특히 과학을 산업의 바탕으로만 여겨 왔다. 그래서 돈 되는 연구에 너무 집착한 것이 아닌지…. 황교수의 연구 결과가 구체적으로 나오기도 전에 몇 조 또는 몇 십조 원에 해당한다고 추산한 것은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과학의 연구 결과를 화폐가치로 환산하려면 매우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리가 학문이나 과학의 본질에 대하여 너무 무지했음을 반성해야 한다.
학문은 학자들이 열심히 다투어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만 조성하면 식물이 자라듯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이러한 분위기 조성은 최소한의 연구비 배정을 모든 분야에 골고루 하고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민주적인 장을 성숙하게 키워야 한다. 남녀노소의 구별이나 학계 원로나 신진의 차이를 두지 말고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에 따라서만 평가하는 분위기가 긴요하다.
성장 속도가 늦다고 조급한 마음으로 무리하게 잡아당기면 뿌리도 내리기 전에 시들어 버린다. 이번 사태도 황 교수 개인에게 너무 과다한 부담을 지워준 우리 사회의 조급한 분위기가 크게 기여하지 않았는가. 물론 이 사태의 가장 무거운 책임은 황 교수 개인에게 있지만 그를 둘러싼 연구원들은 물론 우리 사회 각 분야가 조금씩은 책임을 나누어 져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학문의 사대주의가 우리 학계에 너무 팽배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학계가 연구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지만 미국학회지 그것도 SCI 논문집의 논문이라야 인정받고 국내의 일반 학회지에 실린 논문은 평가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국내 학회는 최근 거의 빈사 상태다. 특히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등재된 논문에 수많은 저자 중 말석이라도 이름이 올라가면 단독 저자로 국내 학회지에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것보다 높게 평가받는 분위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도 '사이언스'지에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표지 논문으로 실렸다는데 우리 사회가 미쳐버린 것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생산하는 정보는 시간을 다투는 현실에서 우리 학계보다 외국 학계가 국내학자의 정보를 한발 앞서 취득하는 현상이 안타깝다.
어느 학회지나 편집위원회에서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제시된 기초 자료를 어떻게 논리적으로 전개하여 타당한 결론을 도출했는가로 결정한다. 기초 자료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이번 경우처럼 원자료(raw data) 자체를 조작했을 경우는 진위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황 교수팀이 과학계의 기반을 흔들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사이언스'지에서는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원자료 자체를 심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황 교수팀에 연구원이나 연구조원으로 참여해 실제 기초 자료를 취급한 이는 사전에 몰랐을 리 없다. 다만 책임연구원의 권위에 눌려 발언을 못하고 시키는 대로 따랐을 것이다. 민주적으로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면 사태가 이 지경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양승영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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