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석파정(石坡亭)

대원군의 별장이던 '석파정'(서울 종로구)이 13일 경매돼 새 주인에게 넘어갔다. 대원군의 후손들 소유로 있다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주인이 바뀌었던 재산이다. 감정가 75억4천여 만원에 매물로 나왔다가 두 차례의 유찰을 거쳐 63억여 원에 낙찰됐다고 한다. 전체 1만3천여 평 크기이고, 그 중 1천여 평만 일반주거지역일 뿐 나머지는 문화재 및 군사 보호구역으로 묶였으며, 덕분에 깊은 산 속 같은 풍광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황현이 쓴 '매천야록'에 따르면, 석파정은 본래 김흥근의 것이었다. 흥근은 세도로 이름 높았던 '장동 김(金)'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그만은 바른 소리를 잘 해 헌종 때 귀양을 다녀온 적 있고, 대원군에게도 밉보였다. 이조판서로 일곱 번 부름을 받고도 사양해 이름이 높아졌다. 대원군이 석파정을 탐 내 사 들이려 할 때 거절하기도 했다.

◇대원군은 당시 권력자였다. 종전에는 '왕약왈'(王若曰)로 문장이 시작되는 임금의 명령서에 따라 세상이 움직여졌으나, 대원군 정권 때는 '대원위분부'(大院位分付)라는 다섯 글자만으로 안팎에 시행됐다. 대원군이 석파정 뺏을 꾀를 냈다. "한 번 가서 놀 수 있게 빌려 달라"고 해 놓고는 왕을 행차케 했던 것이다. 결국 흥근은 "왕이 머물렀던 곳에 신하가 다시 머물 수 없다"며 별장을 포기했다고 매천야록은 기록했다.

◇'석파'는 대원권의 호이다. 그 호를 이름으로 사용한 것 중에는 '석파정' 못잖게 '석파난'이라는 게 유명하다고 했다. '석파가 그린 난초 그림' 석파난은 지금도 값이 비싸다지만, 그의 생시에도 유명했다. 청나라로 잡혀 가 갇혀 살던 시절 대원군은 석파난을 중국인들에게도 팔았다. 그는 완당 김정희에게서 서화를 배웠다고 했다.

◇석파난으로 미뤄 대원군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석파정을 빼앗고 나라를 손 안에서 주무르던 기술 역시 대단한 '정치술'로 봐 줘야 할 듯싶다. 하지만 그 재주와 정치술은 나라를 구하는 데 유용한 게 아니었다. 요즘 정치판에도 대단한 정치술이 횡행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 역시 미덥지 못하다. 미국에서 우리 현대사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어떤 학자가 했던 걱정이 생각난다. "지금 세계정세가 꼭 조선 말기 형국 같다". 10여 년 전 일이었다.

박종봉 논설위원 paxkore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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