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문학의 거장을 만나다

김준태 지음 / 한얼미디어 펴냄

'태어나 처음으로 전깃불을 보는 순간 온몸이 움찔했던 것처럼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창문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빛이 하나같이 나를 낯선 이방인으로 만든다.'

단테의 '신곡' 밀턴의 '실낙원'과 더불어 세계 문학의 3대 성지로 손꼽히는 '파우스트'의 저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고향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류의 정신사를 빛낸 문학과 사상의 거장들의 발자취를 쫓아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김준태 시인에게 북유럽의 음산한 밤 안개와 옷깃을 파고드는 추위는 마치 동북아시아 농경 민족의 후예인 시인을 사방팔방 까마득한 광야에서 후줄근하게 빗줄기를 맞는 것 같은 어둠속으로 몰아놓는다.

시인은 비행기 트랩을 내려서면서 괴테가 '파우스트'를 통해 말하려 했던 '인간은 살아있는 한, 노력하는 한 끊임없이 방황하기 마련이다'라는 시구를 마음 속으로 불러들인다. 시인은 그때 비로소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들을 참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의 해답을 찾게 된다.

책 '세계문학의 거장을 만나다'는 시집 '참깨를 털면서' '국밥과 희망' 등에서 생명존중과 공동체정신을 담은 시 세계를 보여온 김준태 시인이 지난 20여 년간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을 종횡하며 찾은 인류의 정신사를 빛낸 문학과 사상의 거장들의 발자취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시인은 "한 줌의 흙이 한 송이의 꽃을 피울 수는 있어도 초대형 TV나 반도체 문명은 한 송이 꽃은커녕 풀 한 포기도 키워 낼 수 없듯 아무리 첨단의 디지털 문명이 발달하여도 철학과 문학작품이 우리의 정신 혹은 영혼 속에 채워주는 그 공백을 대신 메우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천방지축 문학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 문학기행에서 그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시작으로 니체, 헤겔, 릴케, 하이데거 등 21명의 유럽 작가와 쿠퍼, 나다니엘 호돈, 존 스타인벡, 헤밍웨이 등 18명의 미국 작가, 그리고 호찌민,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 6명의 아시아 러시아 작가를 조우하게 된다.

희랍신화와 바이블을 양대 축으로 삼고 문화와 문명의 바벨탑을 쌓아올렸던 서양의 여러 나라들. 그 중에서도 '통일독일'의 신화와 유럽의 통합을 주도했던 게르만인들의 나라 독일에서는 여전히 나치의 상징인 깃발을 휘날리며 소련군들이 팔아먹은 수류탄과 총기를 들고 나치재건을 부르짖는 20대의 네오 나치 젊은이들을 본다.

저자는 그 현장에서 귄터 그라스가 자신의 소설 '양철북'에서 말했듯 '독일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폭력의 씨앗이 들어있을까' 궁금증을 품는다. 멀고 먼 '문학 기행기'에는 여관비를 아끼기 위해 열차 안에서 밤을 지새우고, 햄버거 한 덩이와 캔 맥주로 끼니를 때우며 살 속까지 파고드는 고독을 스스로 삭여 낼 수밖에 없었던 그 여정 속에서의 기억들이 녹아 있다.

천안문 사태 직후 신문기자 신분으로 중국에 들어가다 광저우 공항에서 쫓겨나 다시 상인신분으로 홍콩에서 비자를 얻어 통과해야 했고, 파리에서는 시인 엘뤼아르와 작가 발자크의 무덤을 찾기 위해 드넓은 페르 라 셰즈 공동묘지를 캄캄한 밤이 될 때까지 헤맸던 일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옛 인디언의 땅 미국에 이르러서는 글로벌 시대의 강자가 된 그들의 실체를 엿본다. 그리고 '모히칸족의 최후'를 쓴 쿠퍼를 비롯해 '아메리카의 르네상스'를 가져다 준 '주홍글씨'의 저자 나다니엘 호돈, 자본주의와 경제 공황에서 파행되는 부도덕의 종말을 거대한 파노라마로 부각시킨 드라이저의 '아메리카의 비극'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아시아에서는 베트남과 중국의 정치 지도자이면서 빼어난 시인이기도 했던 호찌민과 마오쩌둥 등을 통해 정치와 현실, 역사와 문학의 관계 등의 조화로운 융합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곰곰이 들여다본다.

저자는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가 그의 나라 아즈텍문명에서 영감을 얻어 쓴 장시 '태양의 돌'에서 노래한 '나는 너다. 그리고 너는 나다'라는 시구를 떠올린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언어이며 그것을 소통시켜주는 힘과 아름다움은 바로 문학"이며 "소통의 문화가 확대될 때 지구촌, 우리들의 세계가 보다 평화스러워질 것이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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