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 다양해지고 풍성해짐에 따라 배우를 대하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주연급 배우에만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면, 이제는 연기 잘하는 조연들에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최근 영화계에서 화제를 모으는 대작이나 인기작을 보면 어김없이 탄탄한 실력을 갖춘 조연 배우들이 영화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폭발적인 인기로 가히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 제작 이글픽쳐스)는 주연배우 정진영, 감우성, 이준기 외에 조연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대표적인 배우가 내관 처선으로 등장하는 장항선. 시장 놀이판에서 연산과 녹수를 희롱하는 광대 장생 일행을 궁으로 끌어들이는 장항선은 이준익 감독 표현 대로라면 "가장 높은 곳에서 이 판을 보고 있는 인물이며, 연산의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죽음은 곧 연산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를 보는 이들은 한결같이 장항선과 윤주상의 담판 장면을 명 장면중 하나로 꼽는다. 마치 연기의 달인들이 신선처럼 앉아 선문답을 주고 받는 장면은 이를 연기한 두 배우에게 '세월이 준 선물'과도 같다.
장항선 외에 광대패로 출연한 유해진, 정석용, 이승훈도 진정성을 무기로 희극과 비극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연기를 펼쳐 보이며 관객을 웃고 울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권상우·유지태 주연의 '야수'에서는 조직폭력배 보스 역을 맡은 손병호의 연기가 단연 눈에 띈다. 스타성과 연기력을 갖춘 두 젊은 배우에게서는 맛보기 힘든 관록있는 연기를 펼치며 악역 캐릭터의 지평을 확대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실 '야수'는 두 젊은 배우와 손병호의 팽팽한 대결 구도로 내내 긴장감을 유발한다.
권상우가 "손병호 선배를 보면서 '연기 잘한다'는 말의 의미를 새삼 느꼈다. 너무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셨다"고 말할 만큼 손병호는 때론 잔인하게 친구까지 죽이지만, 때론 스러질 수 있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흔들리는 모습까지 다양한 연기 변주를 선보였다.
지강헌 사건을 영화화한 '홀리데이'에서는 이얼의 연기가 새삼 주목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포함해 여러 영화에서 선한 눈빛을 자랑했던 이얼은 '홀리데이'에서 특사를 위해 같은 죄수를 괴롭히다 결국 인간애를 느끼며 슬픈 결말을 맞는 교도소 방장 대철을 연기했다.
그의 선한 이미지 때문에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못된 방장 모습이 낯설어 보인다는 평도 있지만 그는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중심을 잡는 연기가 어떤 것임을 보여준다.
설경구·송윤아 주연의 '사랑을 놓치다'에서는 이휘향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두 주연 배우의 사랑 외에도 이휘향과 장항선의 사랑이 영화의 또 다른 축으로 드라마적 구성을 탄탄히 밑받침해주고 있다. 이휘향은 세심한 캐릭터 분석으로 설경구와 송윤아 등 후배 배우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휘향은 영락없는 시골 아낙네처럼 군데군데 피부를 태운 채 일상적인 삶과 사랑을 연기했다.
송윤아는 "선배들의 연기 열정에 새삼 고개 숙여진다.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어서 우리 같으면 대충 넘어갈 수 있는 장면도 꼼꼼하고 세심하게 표현하셨다"며 선배 연기자의 열정에 감탄했다.
이러한 탄탄한 조연 배우진이 한국 영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기도 하다. 조연급 배우에 머물렀다 출중한 연기력으로 마침내 주연 배우로 우뚝 선 황정민의 예에서 살펴 볼 수 있듯 관객도 단지 얼굴 잘 생기고 멋진 배우 외에도 연기 잘 하는 배우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긍정적인 현상이 자리잡고 있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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