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형님'과 '오빠'

"아줌마와 조폭의 같은 점 다섯 가지는?" "몸에 문신이 있다, 칼을 잘 쓴다, 떼지어 다닌다, 형님 형님 하고 부른다, 밤이면 더 무서워진다."

법조 브로커 윤상림이란 자가 요즘 세간을 뒤흔들고 있다. "현존하는 최대 브로커"라는 어느 수사검사의 말마따나 로비인맥이 대단한 모양이다. 청와대'정계'군'법조계'대기업 어디랄 것 없이 형님'동생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한다. 수첩에 적힌 형님과 동생만도 1천여 명이나 된다니 가히 울트라 문어발이다.

언제부터인가 좋은 우리말 중 시류 따라 급속하게 변질되는 것들이 있다. '형님'이 그 한 예다. 남자 형제, 인척, 선후배 간에는 물론 여자들도 동서지간에 서로 정겹게 형님'아우님 하고 불러왔다. 점잖고 어딘가 고전적인 격조를 지닌 말이었다. 한데 어느 때부터 돌연 상스러운 이미지로 변해가고 있다. 얄궂게도 검은 양복차림의 남자들이 허리를 90도나 꺾는 모습들이 먼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오빠'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오빠'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따뜻하고 포근하고 정겨운 것들이었다. 개구쟁이 동생들에게 듬직한 등을 내어주던 존재, 학교의 급식 강냉이떡을 반쯤 남겨 시오릿길을 달려와 동생에게 쑥 내밀던 애어른 같던 오빠, 봄날이면 보리피리도 불어줄 줄 알고, 복숭아꽃 필 때는 하모니카도 곧잘 불곤 하던 우리네 오빠들. 동요 '오빠 생각'은 오빠가 없는 사람들에게조차 오빠라는 존재에 대해 아련한 그리움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요즘은 남편이 오빠고 오빠가 남편이다. 20대는 물론 30, 40대 아줌마조차 온통 오빠다. 잠깐 딴 데 정신팔다보면 어느 쪽을 가리키는 건지 헷갈리기 일쑤다. 나아가 이젠 '아저씨'도, '젊은 남자'도 오빠로 불리는 판이다. 60대의 어느 점잖으신 분 왈, 머리 깎으러 미용실에 가니 묘령의 여성들이 오빠 이리 앉으세요, 오빠 어쩌고 하는데 마치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더라나.

낱말의 의미 전도(顚倒) 현상이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도 대부분 그저 재미스럽게만 받아들일 뿐 별로 문제시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이러다간 멀지 않아 국어사전을 수정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를테면 '형님'은 '조폭 용어로 선배' 라든가 '오빠'는 '①남편②아저씨③젊은 남자' 라든가. 언젠가 남북통일이 되면 대화 중에 멍해지거나 머리를 갸우뚱거릴 사람 많아지겠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