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 농촌체험-(3)日 성공사례에서 배운다(하)

변변한 관광지 없지만 회원제'農泊체험'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된 일본에서는 지역주민들이 자기 고장의 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려 노력하는 모습을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운동은 '지역산업 진흥'을 뜻하는 '무라오꼬시', '살기좋은 지역사회 만들기'를 뜻하는 '마치쯔꾸리'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면서 1980년대 중반 이래 일본 전역에서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오이타현(大分縣) 아지무정(安心院町)과 유후인정(湯布院町)은 규슈(九州) 미야자키현(宮崎縣) 아야정(綾町), 구마모토현(熊本縣) 오구니정(小國町), 나가사키현(長崎縣) 사이카이정(西海町)과 또 다른 방식으로 성공을 거뒀다. 바로 관(官) 대신 민(民)이 마을의 개발을 주도하는 '민주행종(民主行從)' 형태다.

■사람이 자원이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아지무정에서 쌀, 콩농사를 짓는 나카야마(73) 씨는 심심할 겨를이 없다. 바쁜 농사일 와중에 같은 마을에 사는 손자 3명을 돌보랴, 전국에서 몰려드는 '농박(農泊)' 체험객들 뒷바라지하랴, 눈코 뜰 새가 없다.

주변에 변변한 관광지 한 곳 없지만 나카야마 씨의 집을 찾은 체험객은 지난해 700명을 웃돌았다. 마을에서 농박을 받는 15가구의 평균보다도 3배쯤 많다. 전체 소득 중에서 농박 소득은 70% 수준.

나카야마 씨 집에서 서비스(?)를 기대해선 안 된다. 식사는 우물에서 손수 물을 길어 해결해야 하고 세숫물도 장작을 패 불을 때야 한다. 대신 손수 담은 술과 농산물 등 넉넉한 인심은 아낌없이 받을 수 있다.

나카야마 씨는 "농사만 지으면 따분한데 손님들이 있어 오히려 즐겁다"며 "편하게 느껴서인지 일부러 항공편 세일기간을 기다려 찾아오는 홋카이도(北海道) 단골도 있다"고 귀띔했다.

아지무마을에서 농촌관광을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 상주인구가 점차 줄자 교류인구의 증대방안을 찾아 나선 것. 나카야마 씨를 비롯한 4가구가 중심이 돼 '아지무정그린투어리즘연구회'를 결성했지만 곧바로 난관에 부딪혔다. 최소 방이 5개 이상은 돼야 숙박업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관련 규정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농가민박은 숙박업이 아닌 체험장'이라며 줄기차게 허가를 요구, 결국 중앙정부의 승낙을 받아냈고 '아지무 방식'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아지무 방식의 독특한 점은 회원제란 것. 연간 2천 엔의 회비를 내면 마을에서 열리는 각종 이벤트에 초청받을 수 있다. 회원카드에 새겨진 '한 번 오면 먼 친척, 10번 오면 진짜 친척"이라는 문구가 무척 인상적이다. 마을 주민들은 벤치마킹에도 열심이다. 방문객 1인당 6천 엔씩 받는 체험비용 가운데 250엔을 회비로 모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유럽연수를 다닌다.

나카야마 씨의 부인 부인 미야코(66) 씨는 "예전에는 농촌에 사는 것을 부끄러워했지만 이제는 자부심을 느낀다"며 "보여줄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마음의 감동을 주려 노력한 덕분에 전국 최고의 마을이 됐다"고 자랑했다.

■유후인

오이타현 한 가운데에 있는 유후인정(湯布院町)은 젊은 일본여성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하는 온천휴양지이다. 하지만 같은 온천이더라도 인근 벳푸(別府)와는 첫 느낌부터 다르다. 여관 수가 100개를 넘지만 대규모 호텔이나 유흥가는 없다. 거리에는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을 파는 상점과 예쁘게 꾸민 노천카페만 즐비하다.

한 해 관광객이 400만 명을 넘는 유후인의 개발은 '자연 그대로의 농촌관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계기는 1950년대의 댐건설 저지운동과 1970년대의 골프장 반대운동.

외국 선진지를 견학하고 돌아온 젊은 관광업·숙박업자들을 중심으로 주민들은 '유후인의 자연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고 마을만의 멋을 활용한 건전한 관광지 조성에 나섰다. 그 결과 별이 반짝이는 산촌에서 연주가와 주민·관광객이 만나는 낭만적인 음악제와 영화제를 잇달아 유치하고 박물관·미술관을 건립, 1981년에는 정부로부터 국민보양온천지 지정을 받았다.

농업과 관광의 긴밀한 연계도 오늘의 유후인을 있게 한 하나의 동력으로 꼽힌다. 도시민들에게 소를 한 마리씩 분양하고 투자금액의 이자로 신선한 채소를 제공하는 '소 한 마리 갖기운동'은 도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또 농가들은 숙박업자들과 계약을 맺고 촌닭, 재래식 된장 등을 생산해 안정된 판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유후인관광협회 아베 사무국장은 "인근 유명 관광지와 차별화된 개발이 성공 요인이었다"라며 "걸으면서 느끼는 곳,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규슈에서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 아지무정의 농촌관광 3대 강령

1. 도시와의 교류를 통해 마을의 근간산업인 농업을 보호육성하고, 발상의 변화와 새로운 연대 아래 경제적 활성화로 농촌 가정을 건실히 한다.

2. 농촌 환경, 경관을 보전하여 쓰레기 없는 마을 만들기를 원칙으로 한다.

3. 농촌의 사회적, 경제적 향상을 목표로 한다.

사진:오이타농업문화공원에서 열린 볏짚쌓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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