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이런 出馬는 막자

별명이 왕군수인 어느 지자체장은 재출마에 대비해 일찌감치 자신의 심복으로 읍'면장을 채웠다. 이 자리는 직접 주민 하나하나 챙길 수 있는 대민 행정의 최첨병이다. 거기에 평소 '형님 아우'하며 은밀하게 엮어 놓은 의형제를 박아 놓았다. 이들이 요즘 한창 신경 쓰는 일은 모임마다 찾아다니며 봉투 내밀기. 서너 명만 모여도 만사를 내던지고 달려간다. 대접받는 사람들은 군수가 대는 밥값이란 걸 눈치 챈다. 시골 읍'면장의 주머니 사정이라야 빤하기 때문이다.

왕군수는 평소에 갖가지 기관과 단체를 자신의 외곽 조직처럼 부려먹고 있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군수 얼굴이 사는 행사를 마련하도록 들쑤신다. 금융기관에는 막대한 군청 자금 예치를 무기로, 사회단체 같은 곳은 예산 지원을 압박 카드로 들이대는 수법이다. 때때로 이들에게 이름만 걸게 하고 뒤는 군청이 댄다. 이들 스스로도 군수 눈 밖에 났다가는 좁은 바닥에서 행세하기 힘들다는 걸 생리적으로 안다. 어떤 때는 무슨 조합장 선거나 단체장 선거를 뒤에서 조정해 자기 사람을 꽂아 놓기도 한다.

왕군수는 예산도 자기 쌈짓 돈이다. 따져 봐서 임기 동안 성과가 날 것 같지 않으면 아무리 경제성 좋은 사업이라도 일단 뒷줄이다. 당장 생색이 나는 골목길 포장 따위의 쪼가리 사업이 먼저다. 민원 예산도 직원 인사처럼 내 편이 우선 배정 기준이다. 선거 때 표가 적은 동네는 볼 것 없이 찬밥이다. 축제는 크든 작든 펑펑 써댄다. 그러니 빈약한 시골 살림은 군수 치다꺼리 하다 볼일 다 볼 정도다. 주민들은 그런 내막을 알 리 없다. 요란한 쇼맨십으로 환심을 사놓기 때문에 주민들은 멋모르고 '군수 최고'다.

군청 직원들은 이런 사정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사석에서조차 씹었다가는 제꺽 군수 귀에 들어간다. 오히려 마음에도 없이 '우리 군수 대단하다'고 합창한다. 한 번 찍히면 임기 내내 고달픈 신세란 걸 알기 때문이다. 군수를 견제해야 할 의회 또한 제힘을 못 쓰는 판이다. 명색이 주민 대표란 사람들이 군수에게 밉보였다가는 지역구 예산이나 다음 선거에서 낭패 볼 거란 이상한 분위기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전국에는 왕군수 비슷한 단체장이 꽤 있는 모양이다. 올해로 연임 제한에 걸려 그만두는 전국 3선 기초단체장의 60%가 '공사(公私) 구분이 불분명하거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을 뽑지 말아야 할 후보 1순위로 꼽았다(최근 중앙일보 조사). 다른 능력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공직자 자세마저 못 갖춘 단체장이 적잖다는 체험적 증언인 것이다.

올해는 지방자치 제2세대 시대를 여는 주요한 시기다. 그런 자치의 연륜만큼 오는 5월 선거는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 다른 조건은 두고라도 3가지 유형은 무조건 배제해야 할 일이다.

우선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범법의 흠결이 있는 인물은 고개를 돌리자. 그들이 선거법 위반으로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피하고, 또는 일반 형사범으로 금고 이상의 형에 걸리지 않고 출마 자격을 얻었다 해도, 그건 법적 면죄부일 뿐이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교묘하게 피선거권의 제한을 빠져나온 속사정은 누구보다 본인이 빤히 안다. 그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나서는 건 주민 모독이다. 제 버릇 어디 가겠는가.

그 다음 밥벌이 출마는 막자. 지방의원이 기초 4천만~5천만 원, 광역 5천만~7천만 원 '유급제'로 바뀌자 출마 선언이 쏟아지고 있다. 출마 목적이 생계 부양이면 아무래도 나중에 이것저것 한눈팔 것이고, 본연의 주민 봉사는 뒷전이게 마련이다. 출마자의 납세 이력을 꼼꼼히 따져야 하는 이유다.

또 하나 곤란한 건 철새 출마다. 선거 때나 나타나는 인물은 취약한 지역 기여도와 기반 때문에 토호 세력에 과도하게 기댈 개연성이 높다. 그럴 경우 소신 행정은 물 건너가고 부적절한 유착이 춤출 수 있다. 정당 공천에만 목을 매는 정치적 인물도 그런 점에서 재고 대상이다.

이런 비토 분위기가 지역마다 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 때마다 시달리는 '덜 나쁜 인물 고르기' 즉 차악(次惡)의 선택이란 굴레를 이번에도 벗어날 수 없다.

金成奎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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