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양유정 소설집) 마녀가 된 엘레나

소설문학의 저변이 척박한 향토문단에 모처럼 참신한 작가가 등장했다. 계명대를 졸업하고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작가 양유정(34). 그가 출간한 첫 소설집 '마녀가 된 엘레나'는 일견 낯설게 느껴진다.

그것은 한국전쟁의 격전지인 지평리와 팔미도에서 아프리카의 지부티와 필리핀 제도의 섬 그리고 프랑스와 칠레로 이어지는 다양한 시공간 때문만은 아니다. 유행과 시류에 익숙해진 눈에 일순 시린 안약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할까.

작가는 다방면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전쟁·역사·신화를 제유적 공간으로 삼아 전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부터 인간의 아이덴티티를 복원하려는 끈질긴 서사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지평리'와 '지평리 가는 길'은 중국군과 미군의 시각으로 본 한국전쟁의 모습이다. 이방인의 눈으로 전쟁을 서술하면서, 전쟁이란 특수 상황에서 개인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전체의 논리에 의문을 제기한 작품이다.

3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희생양' 또한 전체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의 기원을 폭로하고 있다. 부족의 신념과 일체성 강화를 위해 고대사회에서 존재했던 희생제의와 폭력의 메커니즘이 변이된 형태로 중세를 관통해 현대에도 엄존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마녀가 된 엘레나가 그렇고, 영국군 병사 존의 희망과 절망이 그렇다.

전체의 평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폭력을 정당화하는 아이러니. 작가는 "자국의 승리를 위해 무고한 병사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현대의 문명이 잔혹한 비인간적 축제를 벌이던 원시사회보다 도덕적이고 인간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라고 되묻는다.

현대문명이야말로 제도와 법률의 힘을 빌려 오히려 희생양의 메커니즘을 더욱 정당화시키지 않았느냐는 칼날같은 질문이다. 작품 '발굴'과 '팔미도 등대'는 교과서가 잃어버린 역사의 진실을 문학이 재발굴할 수 있음을 웅변한다.

문학평론가 정재림 씨는 "무거운 주제에 천착할 수 있는 작가의 저력과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며 "문학과 삶에 대한 작가의 진중함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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