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를 마치면 후줄근한 몸으로 승용차 핸들을 잡고 퇴근길을 서두른다. 차량 운전자들이라면 도로상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신호등과 방향지시등이다.
네거리마다 차단한 등불이 빈 하늘에 걸려 있고, 더러는 차량 뒤꽁무니 왼쪽이나 오른쪽에 불빛이 깜빡이고 있다. 김광균 시인의 시구절 그대로 '내 어디로 가라는 슬픈 신호'인가.
큰 도로변마다 고층 아파트 건물이 삼단같이 무성한데 도심 속의 외로운 영혼은 까닭도 없이 눈물겹다. 이따금씩 파랗게 빨갛게 색깔을 바꾸며 허공에 떠 있는 신호등은 정녕 어디로 가고, 어디로 가지 말라는 황망한 불빛인가.
황혼이 길게 드리워지고 어둠살이 짙게 스며드는 퇴근 무렵, 네거리 신호등은 그래서 더욱 서럽다. 그것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감을 잃어버린 채 떠돌고 있는 도시인들의 자화상같아서이다.
깜빡이(차량 방향지시등)는 어디로든 떠나야 함을 알리는 현대인들의 불안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표류하는 도시인들의 애달픈 손짓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어지러운 세태이다. 깜빡이란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리며 주변 차량 운전자의 황망한 행로에 새삼 방향감을 잡아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회전이나 좌회전을 하면서 깜빡이를 작동시키지 않는 운전자도 많다. 신호대기를 할 때는 깜빡이를 꺼놓고 있다가 신호를 받고서야 급하게 깜빡이를 켜고 선회하는 차량도 있고, 좌회전이나 유턴을 할 때도 아예 왼쪽 깜빡이를 켜지도 않고 운행하는 차량도 있다.
어떤 운전자들은 비상깜빡이를 작동시켜 운행 중 주변 차량에 대한 고마움이나 미안한 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신호등과 깜빡이야말로 차량의 방향과 상태를 알려주며, 운전자로 하여금 운행에 관하여 예측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의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예측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신호등이 제대로 작동되고 차량 방향지시등을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그만큼 여유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렇게라도 한다면 도시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비애와 고독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까. 도시의 화려한 불빛에 숨어 있는 황량감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을까. 오늘밤도 신호등은 허공에 걸려 있고, 도로마다 차량마다 깜빡이 불빛이 어지러울텐데….
신태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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