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브루클린에 사는 20세의 한 흑인 청년이 농구장 근처에서 벼락을 맞았다. 그는 빈민가에 사는 또래의 청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하고 어릴 적부터 갱단과 연루되어 마약을 상용하는 문맹(文盲)이었다. 다행히도 큰 외상(外傷)없이 목숨을 건졌지만 그에게는 놀라운 능력의 변화가 생겼다. 병실에서 뉴욕의 마천루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그는 간호사에게 백지와 연필을 달라고 했고 한번 본 장면을 빠른 속도로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사진보다도 더욱 정밀하게 창밖에 펼쳐진 풍경을 묘사했던 것이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도 그는 마찬가지 결과를 보여주었다. 또한 조사 결과 그때가지 단 한 차례도 그림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인간의 뇌는 상상을 초월하는 용량과 연산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평생 총 뇌세포의 5-6%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특별연구대상인 아인쉬타인의 뇌도 약10%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이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분야는 단연 시신경 관련된 정보처리이다. 가용 뇌세포의 60-70%가 여기에 동원된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특별한 기재를 가지게 된다. 보이는 모든 것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가진 부분만 인식한다. 정보의 질의 최대한 높이면서 동시에 최소화 하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수천의 사람이 가득 찬 역 광장을 높은 곳에서 바라본다고 상상해보자. 특별한 조건 없이 모든 상황이 한꺼번에 뇌 속으로 들어온다면, 또 그런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컴퓨터가 다운되듯이 우리의 뇌도 작동을 멈출 것이다. 이란 조건을 주어 포커스를 맞추면 나머지는 보이되 인식되지 않게 되고 뇌는 최소한의 용량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흑인청년은 벼락으로 인해 그 특별한 기재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다 한꺼번에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94%의 뇌는 과연 놀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많은 이론(異論)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담고 있거나 어떤 일들을 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 할 것 같다. 흑인청년이 받아들인 정보가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도 모든 것을 받아들이되 인식된 것은 6%의 뇌에 나머지는 94%에 넣어두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생명진화의 출발에서부터 모든 장면들이 DNA를 통해 전달되어 왔고 그것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인간이 소우주란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황보진호 (하늘북 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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