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1월 22일(러시아력 1월 9일) 아침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차르의 동궁(冬宮) 앞에서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평화적으로 행진하던 노동자들이 쓰러졌고, 피가 광장에 쌓인 눈을 붉게 물들였다.
기마대는 노동자와 시민들을 뒤쫓으며 무자비하게 총칼을 휘둘렀다. 수백~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3천여 명이 부상을 입은 이 잔혹극이 바로 러시아 혁명의 발단으로 알려진 '피의 일요일' 사건이다. 당시 황제는 부재 중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노동자들의 소박한 신뢰는 단숨에 무너졌다.
"폐하, 인민들을 저버리지 마시옵소서. 당신과 당신의 신민을 가르는 벽을 깨부수십시오. 저희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시면 러시아는 행복해질 것입니다"라는 청원서는 이날 이후로 "우리에게 이제 차르는 없다. 전제를 타도하자"는 분노의 함성으로 바뀌었다.
파업참가 노동자는 44만 4천 명으로 직전 10년 평균치의 10배 이상에 달했다. 정치적 구호를 내건 파업이 러시아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돼 1905년 1월부터 4월까지 파업 참여자수는 81만 명에 이르렀다. 불어닥친 변혁의 물결은 결국 제정 러시아의 붕괴로 이어졌다.
▲1926년 한말 독립운동가 노백린 사망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 선언.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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