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45·여·가명) 씨는 두 달 전 각막이식 수술을 받아 새 삶을 살고 있다. 3세 때 눈병을 심하게 앓았던 이씨는 어릴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고 결국 지난 1992년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부터는 사실상 시력을 잃었다.
각막 이식 수술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의사진단을 받은 이씨, 그러나 각막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각막 이식을 포기한 이씨는 지난해에야 다시 병원 문을 두드렸고 1개월여 만에 각막 기증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빛을 얻었다. 이씨는 "더 많은 기증자가 나타나 많은 사람들이 눈을 떴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대구·경북엔 각막이식만 받으면 바로 눈을 뜰 수 있는 수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우리'와 더불어 살고 있다. 하지만 각막 이식으로 제2의 삶을 사는 이들보다는 기약없는 각막 이식에 지쳐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지난해 불어닥친 각막 기증 열풍 속에서도 유독 대구·경북만은 이 기류에서 비켜나 있기 때문이다.
◆새 빛, 새 생명, 새 희망
"보이는 기쁨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희미하기만 했던 사물들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마다 자꾸 눈물이 납니다. 각막을 기증해 준 이름 모를 당신!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김영미(60·여·가명) 씨는 올 새해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계명대 동산의료원에서 지난해 여름 각막 이식 수술을 받고 무려 30년 만에 시력을 회복하게 된 것.
민간요법으로 눈을 잘못 치료하다 시력을 잃기 시작했던 김씨는 5년 전부터는 거의 아무 것도 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각막 이식수술은 결코 쉽지 않았다. TV를 통해 각막 이식 수술이 알려지기 전에는 각막 이식수술로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고, 그 사실을 안 이후에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수술을 자꾸 미뤄야 했던 것.
그러나 김씨는 다시 빛을 찾았고 자신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지금까지 60여 차례의 각막 이식수술을 집도한 계명대 동산의료원 장성동(39) 안과 교수. 그는 "각막 이식 수술만 받으면 바로 눈을 뜰 수 있는데도 각막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거나 각막 이식수술로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장 교수는 또 "환자들 중에는 한국전쟁 때 한 쪽 눈을 다쳤지만 지난해에서야 겨우 각막 이식수술을 받아 지난 50년 세월을 다른 한쪽 눈으로만 산 할아버지도 있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대구·경북의 현주소
대구·경북에서 각막이식으로 눈을 뜰 수 있는 시각장애인들 숫자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공식 자료가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 다만 대구 시각장애인을 2만 명(시각장애인협회 대구시지부 자료)으로 잡았을 때 이 중 10%에 해당하는 2천 명이 각막 이식을 했을 경우, 시력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대구·경북권에서 각막 이식수술이 가능한 경북대병원, 계명대동산의료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영남대병원이 지난해 말까지 이식한 각막수는 겨우 87개. 각막이식을 신청했지만 기증자가 없어 수술을 하지 못하고 있는 대기자만 226명에 이른다. 각막 이식으로 눈을 뜰 수 있는 시각장애인을 2천여 명으로 추정하면 아예 각막 이식 신청조차 않은 이들이 대기자의 9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가 2004년 9월까지 각막 기증 희망자 9만9천 명을 대상으로 거주지역을 분석한 결과, 경기도(29%), 서울(22%), 전라도(18%), 경상도(11%) 순으로 나타나 대구·경북권이 각막 기증 무풍지대임을 증명하고 있다. 경상도보다 훨씬 적은 인구의 전라도가 18%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대구·경북인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대구·경북에서는 미국, 호주, 스리랑카 등지로부터 수입 각막 이식 수술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수술비와 후유증이 문제. 장성동 동산의료원 교수는 "수입비용만 200만~250만 원에 이르는데다 관리가 부실한 일부 각막은 후유증을 불러올 수도 있다"며 "국내 각막기증 희망자가 늘어나면 구태여 수입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국제라이온스협회 대구지구 정재천 총재는 "전통적 유교문화로 보수성 강한 대구·경북정서가 각막 기증을 막고 있다"며 "사랑의 각막 기증 캠페인이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의 눈을 뜨게 해 보수적 대구 이미지를 깨뜨리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것부터 서두르자
보수적 대구 문화에 변화가 일어 각막 기증 캠페인이 큰 성과를 거둔다 해도 현재 상황에서는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다른 제도적 보완책 마련도 필요하기 때문.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박진탁 행정원장은 "각막은 숨진 뒤 6시간 안에 적출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각막 적출을 담당하는 국내 종합병원들의 안구은행(아이뱅크·Eyebank)이 제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국내 종합병원마다 안구은행을 개설, 각막 기증 희망자가 숨을 거둘 때 해당 지역으로 출동하고는 있지만 인력과 장비는 물론 적출 기술도 한계를 드러내는 데다 각막 기증 희망자가 갑작스런 사고를 당해 사망했을 경우 제때 적출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
박 원장은 "각막기증 희망자수를 늘리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면서도 "이제부터는 각막 기증 증가에 대비, 종합 병원들과 장기기증 운동본부 등 민간단체가 제휴, 각막 적출 인력 및 장비를 강화하거나 체계적 각막 기증 희망자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들이 하루 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각막기증 관련 용어해설(자료출처: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각막이란= 눈의 맨 앞쪽에 위치한 투명한 조직으로 빛을 처음 받아들이는 중요한 부분.
▶각막이식이란= 각막이식은 각막 질병으로 인해 시력을 잃은 환자의 혼탁해진 각막을 기증받은 깨끗한 각막으로 교환, 시력을 회복시켜 주는 수술법.
▶국내 각막이식 현황= 전국 시각장애인수는 20여만 명, 각막기증을 받으면 눈을 뜰 수 있는 시각장애인 수는 약 2만여 명. 한 해 각막이식건수는 200여 건.
▶각막기증 자격= 5~70세까지의 건강한 사람으로 간염, 에이즈 등 전염성 질환이 없으면 근시, 원시, 난시, 색맹과 관계없이 기증 가능.
▶언제든지 가능?= 각막기증은 반드시 사후에만 가능하며 사망 후 6시간 이내 각막을 적출해야 한다. 사후 즉시 연락을 주면 안과의사가 고인을 모신 곳으로 가서 각막을 적출하게 된다.
사진: 장기기증 서약-국제라이온스협회 355-C(대구)지구 임원들이 20일 오후 협회 사무실에서 장기기증 서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성택 지대위원장, 박원범 지구 고문, 정성희 특별위원장, 정재천 지구총재, 함원환 지구 부총재, 김승균 특별위원장, 김영곤 지역 부총재. 김태형기자thkim21@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