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40대 애장왕 때 황룡사에 정수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설한풍 몰아치는 어느 겨울 날, 날도 이미 다 저문 저녁이었다. 삼랑사에 갔다가 천엄사 문 앞을 경유하여 황룡사로 돌아오던 스님은, 아기를 낳은 채로 얼어 죽어 가고 있는 한 거지 여인을 발견하였다.
너무나도 가엾게 생각한 스님은 다가가서 그 여인을 포근하게 껴안아 주었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여인이 다시 살아나거늘, 스님은 몸에 걸친 옷을 홀랑 벗어서 그녀의 몸을 덮어 주었다. 마침내 벌거숭이가 되어 버린 스님은 황룡사로 달려가 거적을 덮고 오들오들 떨며 밤을 지새웠다. 바로 그날 밤 궁궐 뜰에 하늘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황룡사 정수 스님을 왕사(王師)에다 봉하거라."
설한풍 몰아치는 겨울이 올 때마다 불현듯이 떠오르는 '삼국유사' 소재의 크리스마스 카드 같은 설화다. 합리주의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이 설화에 대해서 갖가지 이의를 제기하며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겠다. 죽어 가는 여인과 아기를 가까운 천엄사로 업고 가서 따뜻한 온돌방에 눕히는 대신, 옷만 벗어 주고 폭설 속으로 달려가 버렸던 스님의 조치는 과연 적절했을까? 스님이 벗어 준 옷가지를 덮은 채 설한풍 속에 방치되었던 그 거지 여인과 그녀의 아기는 과연 살았을까? 이와 같은 의문에 대한 답변은 당연히 아니고 또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바보에다 머저리에게 왕사에 임명토록 명령을 내렸던 하늘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설화이고, 이 설화의 일차적 주제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희생이다. 보다시피 설한풍 몰아치는 겨울 저녁에 입은 옷을 죄다 벗어 주었던 스님의 놀라운 자기희생과, 버림받은 사람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눈물겹다. 게다가 이 설화는 수도하는 승려의 신분으로서 여인을 껴안는 파격적인 행위를 통하여, 종교나 계율에 봉사하기 위하여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종교와 계율이 존재하는 것임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요컨대 종교의 이름 아래 사람이 죽어 가는 일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이야기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자신이 믿는 종교와 신에 대한 사랑임을 힘주어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과 희생심이 크게 결여되어 있는 사람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무수한 죄 가운데서도 제일 큰 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이종문 계명대 사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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