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청와대 옆 횟집과 이발소

춘앵각. 대구에서는 가장 오래됐다는 이름난 요정이다. 60년대 무렵 개업한 뒤 40여 년 이상을 줄곧 한자리에서 영업해 술깨나 마시는 인사들 사이에서는 경향(京鄕) 가릴 것 없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여주인 ㄴ여사는 벌써 일흔을 훨씬 넘긴 지 오래. 몇 년 전 젊은 마담에게 대를 물려주고 수렴청정(?) 중이다.

춘앵각의 전성기는 3공화국과 5, 6공화국 시절, 속칭 TK 실세들이 잘나갔던 무렵과 맞물린다. 내로라하는 중앙 권력층의 실세들이 지방 행사 때마다 이곳에서 '밤의 정치'를 하다시피 했으니 권력을 좇는 로비꾼들이나 공직자들의 '줄서기' 출입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왕마담 ㄴ씨의 여걸 같은 통 큰 풍모와 경영 수완도 뛰어났지만 그 시절의 요정이나 큰 음식점들의 분위기는 대체로 '밤 정치'의 무대가 됐다.

술상 밑에 묻힌 정치 비화나 밤의 일화도 적지 않았다. 5공 청문회가 열렸을 때다. 왕마담 ㄴ여사가 청문회 TV 중계를 보면서 이런 농담 섞인 '요정식 정치 평론(?)'을 했다고 한다. 청문회장에 불려나온 5, 6공 시절의 일부 권력 실세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 양반도 내 사위, 저 녀석도 내 사위'라고 했다는 우스개다.

평소 여종업원들을 딸처럼 대해 주며 거느리고 있던 왕마담이 '사위'라 부른 풍자 속에서 형님, 아우 하며 코드끼리 얽혀지곤 하는 요정 정치의 분위기를 엿보게 된다.

며칠 전 지난 보궐선거에서 낙마한 열린우리당 이모 씨가 청와대 인근에 횟집을 연다는 뉴스가 나왔다. 청와대 부근 효자동에 토속촌이라는 삼계탕집과 고기 구이집이 마주해 있다는데 그 집 주인이 이씨와 같이 동업으로 횟집을 차린다는 소문이다.

주인 ㅈ씨와 이씨는 초등학교 동창생. 그러나 ㅈ씨는 죽마고우 이씨보다 정치적 후원 관계로는 노무현 대통령과 더 가깝다고 한다.

14년 전 노 대통령이 정치 관련 연구소를 열었을 때 인연을 맺은 뒤 국회의원 출마 때 자신의 당적까지 버리고 선거 지원을 했고, 그 과정에서 안희정 이광재 같은 친노 측근 인사들과 교분을 가졌다는 보도다.

노 대통령도 집권 뒤 몇 차례 이곳 ㅈ씨 삼계탕집을 찾아갔고 요즘도 가끔 청와대에 삼계탕을 배달하기도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정치인이 횟집을 열건 삼계탕집을 하건 굳이 정치적 시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좋게 보면 실권한 어려운 친구를 돕겠다는 우정이 아름다울 수도 있고, 횟집이라도 해 가며 치사한 정치 자금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의지를 높여 보아 줄 필요도 있다.

다만, 집권층 측근 실세 인사가 청와대 바로 옆에다 식당이든 술집이든 '드나드는 공간'을 만들었을 때 지난날 요정의 밤 정치처럼 코드 따라 형님, 아우 하는 결속과 단합이나 따지는 로비 공간으로 변질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당사자들로서는 친구의 생업을 돕는 우정과 검은 돈은 멀리하겠다는 자립 의지가 전부일 수 있어도 '주변'들이 자칫 두 사람의 횟집 개업의 참뜻을 '이용'하려 들면 5, 6공 시절의 요정 정치 식당 로비와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이번에 새로 차려지는 청와대 옆 효자동 이씨네 횟집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효자동 이발소처럼 뭔가 신선한 일화나 남겼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박 전 대통령 전속 이발사의 회고 한 토막 돌아보자.

"박 대통령, 그분만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픕니다. 러닝셔츠를 입었는데 낡아서 목 부분이 해져 있고 좀이 슨 것처럼 군데군데 작은 구멍이 있었어요. 허리띠는 또 몇십 년 매었던지 두 겹짜리 가죽이 떨어져 야들야들 따로 놀고 있고 구멍은 연필 자루가 드나들 정도로 늘어나 있었어요. 자기 욕심은 그렇게 없던 양반이…."

그 이발소 드나들던 주변 인물 중에 장관 되고 국회의원 공천 받아 낸 코드 인사가 있었단 소리는 듣지 못했다. 이씨 횟집도 그런 코드도, 정치도 없는 횟감 좋은 식당으로 돈이나 많이 버시고 번창하기를 기대해 본다.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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