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 논술 유형은 그 상징성으로 인해 지금까지 다른 대학의 논술고사 출제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2008학년도 입시를 준비하는 예비 고2학생뿐만 아니라 2007학년도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자세히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서울대를 지원하지 않는 학생이라도 향후 논술 문제의 출제 경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음 제시문을 읽고 논제에 답하시오.
[가] 시장이 항상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독과점의 횡포, 환경오염의 피해, 공공재의 생산 부족 등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시장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의 경제 활동에 개입해 왔다. 환경보호를 위한 규제, 공기업을 통한 독점 사업의 운영,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에 대한 규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정부는 특정 산업 부문에서의 기업 활동에 대한 인·허가를 특정한 업자에게만 내주기도 하는데, 이는 기업 간의 과도한 경쟁 방지, 자원의 효율적 이용, 공익 증진 등을 위해서이다. 개발도상국에서는 특정한 전략 산업을 육성할 목적으로 정부가 독과점 기업이 될 수 있는 인·허가를 내주는 경우도 있다. 또한, 정부 규제는 소비자의 권익 보호와 산업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목적을 가진다. 정부는 이러한 규제 활동을 통해 경제적·사회적 활동에 수반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국민의 복지를 증진시키고자 한다.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나] 정부 규제는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기업 경쟁력의 약화, 기업과 정부의 유착, 관료 집단의 이기주의와 부정·부패 등이 바로 그것이다. 1980년대 이후 세계 여러 나라들은 국민 생활과 기업 활동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 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민간의 능동적 참여와 자발적 창의가 실현될 때,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예를 들어보자. 19세기에 세계 제일의 경제력을 보유하였던 영국은 20세기 들어 소위 '영국병'이라 불리게 된 지속적인 생산성의 하락과 수출 시장의 축소를 경험하였다.(중략) 1979년 보수당 집권 이후 영국정부는 노조에 대한 강경 정책을 실시하는 한편, 민간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공기업의 민영화, 규제완화, 재정 지출 삭감, 조직 개편 등을 추진하였다. 또한 1980년대 중반 이후 영국 정부는 석유공사, 항공 회사, 전신·전화 회사 등과 같은 주요 공기업을 민간에 매각함으로써, 경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정부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개혁의 결과 영국 경제는 다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1960~1970년 사이에 1인당 제조업 생산 증가율은 선진국 중 11위에 불과하였으나, 1979~1994년 사이에는 2위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다] 모든 개인은 그가 좌우할 수 있는 모든 자본에 대해서 가장 유리한 용도를 발견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물론 그의 1차 관심사는 자기 자신의 이익으로 그 사회의 이익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자신의 이익추구가 자연적으로 또는 오히려 필연적으로 그에게 가장 유리한 용도를 선호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중략) 물론, 각 개인은 사회공공의 이익을 촉진하려고 직접 노력하지 않고, 실제로 자신이 어느 정도 사회공공의 이익을 촉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외국의 산업보다 국내의 산업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함이고, 그가 그 산업의 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게 되도록 그 산업을 운영하고자 하는 것은 그 자신의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 경우에도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이끌려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추구하게 되는 셈이다. 그것이 그가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것은 반드시 사회에 대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실제로 사회의 이익을 직접 추구했을 경우보다 더욱 유효하게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는 수가 많은 것이다. -Adam Smith, '국부론',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라] 인간과 자연 환경의 운명이 순전히 시장 메커니즘 하나에 좌우된다면, 결국 사회는 폐허가 될 것이다. 구매력의 양과 사용을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결정하는 것도 같은 결과를 낳는다. 비록 사람들은 '노동력'도 똑같은 상품이라고 우겨대지만, 일하라고 재촉하거나 마구 써먹거나, 심지어 사용하지 않고 내버려 두거나, 어쨌든 그 특별한 상품을 몸에 담은 인간 개개인은 반드시 영향을 입게 마련이다.(중략) 노동 시장, 토지 시장, 화폐 시장이 시장 경제에 '필수적'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인간과 자연이라는 사회의 실체와 경제 조직이 보호받지 못한 채 그 '악마의 맷돌'에 노출된다면, 어떤 사회도 무지막지한 상품 허구의 경제 체제가 몰고 올 결과를 한순간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Karl Polanyi, '거대한 변환'
▲ 논제1. [가], [나], [다], [라]를 입장에 따라 2개의 그룹으로 나누고 그렇게 나눈 이유를 논술하시오.
▲ 논제2. [라]는 우리 삶을 시장경제에만 맡겨둘 경우에 발생하게 될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경고가 정당한 것인지, 과도한 것인지 위의 제시문들을 토대로 논술하시오.
▲ 논제3. 위의 논의를 기반으로 기업의 입장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란 어떤 것이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설명하고, 그러한 나라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평가하시오.
제시문들은 모두 사회 영역 중 경제의 기초 원리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시문들은 현 자본주의 체제의 기초가 되는 시장경제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시문 [나]와 [다]는 시장경제의 긍정적 측면을, [가]와 [라]는 부정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 왜 시장 경제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낳는 것일까? 이 문제를 해결하면 논제 1번은 저절로 해결된다. 논제 1번은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시장경제의 긍정적 측면을 먼저 보도록 하자. 시장경제의 긍정적 측면은 자유의 긍정적 측면과 비슷하다. 시장경제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유 이념에 근거하고 있고, 19세기 자유주의 혹은 자유방임주의가 팽배하던 시기에 발생한 것도 그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자유란 개념을 경제적 관점에서 들여다보자. 제시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자유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창의성을 보장해 준다는 점이다. 불합리한 구속을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일을 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향상된다. 그것은 결국 아담 스미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시장 경제주의자들은 규제가 적고 자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시문 [나]는 바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철의 여인' 대처가 만성적인 영국병을 어떻게 치료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이런 순기능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자유에 혼란이 따르듯이 시장경제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제시문 [가]에서는 시장경제가 낳는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고 있다. 아담 스미스는 시장경제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동적으로 조절된다고 했지만, 사람들이나 사회는 스미스가 생각한 것처럼 이성적이지 않다. 그래서 능력과 힘에 따라 독과점이 형성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제때 만들어 내지 못하고, 과잉 투자가 이루어져 자원이 낭비되고 환경이 파괴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제시문 [라]가 보여주듯 사회적인 강자는 약자의 노동을 착취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사회적인 약자는 사회로부터 버림받거나 소외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기업조차 무한경쟁에 내몰려 주기적으로 파산하여 공항이 일어날 수 있다. 나아가 무절제한 이윤 창출 과정은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에게도 혹독한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인간과 자연 모두 강자의 먹이가 되는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제시문 [라]에 나오는 폴라니의 주장은 시장경제의 위험에 대한 경고가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폴라니의 설명은 마르크스가 주장한 내용과 연결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며, 결국 그런 소외는 인간 나아가 사회로부터의 소외로 발전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것만이 소외를 극복하는 유일한 해결책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런 공산주의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경쟁의 원리를 무시하다가 결국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자본주의 체제에 문제가 있지만 그 체제가 갖는 강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을 전체적으로 감안하면 논제 2번의 실마리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논제 3번은 어떻게 풀어갈지 살펴보자.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흔히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규제가 없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의 규제가 많으면 기업을 설립하기도 힘들고 운영하기도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우리나라 경우 서류를 꾸미는 데도 너무 복잡하여 기업을 설립할 수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이다. 또한 규제가 많아 기업 활동을 하는데 너무나 번거롭다고 한다. 그래서 기업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부에 규제를 풀어 줄 것을 요구하며 마음대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규제를 푸는 것만이 능사인가? 기업을 마음대로 설립할 수 있으면 과연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무한 경쟁을 하게 되고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 이뤄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설 땅이 있겠는가? 결국 강한 자만이 살아남게 되고 사회적 약자는 발붙이기가 어렵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을 것이다. 규제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면 더욱더 약육강식의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또한 규제를 풀면 노동의 착취가 자행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을 보면 그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똑같이 일을 하는데 정규직에 비해 비정규직은 형편없는 돈과 대우를 받는다. 정부의 규제가 심한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노동의 탄력성을 위해 시장경제의 원리를 대폭 수용한 이후 기업들은 이윤 창출을 이유로 비정규직을 대규모로 고용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을 많이 거느린 기업일수록 많은 흑자를 내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배고픔에 허덕이고 사회적 푸대접으로 서럽게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소외 계층이 많은 것이 과연 기업에 좋기만 할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춥고 배고픈 사람이 많으면 많은 만큼 소비가 진작되지 않아 사회에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결론적으로 규제가 없어지면 처음에는 기업하기 좋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경제적 약자들이 몰락하여 결국 공황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따라서 규제 완화는 강한 자들과 대기업을 위한 논리로 흘러갈 공산이 큰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시장경제의 근간인 자율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율성이 보장될 때 생산성이 높아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단 시장 경쟁의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적절한 규제를 통해 시장이 원만히 굴러가게 해야 한다. 시장경제가 근간이라고 해서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으면 사회적 강자인 대기업의 횡포가 만연해져 시장경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의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정부의 적절한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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