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개골산 용을 타고 오르다

얼어붙은 금강산의 구룡폭포를 오른다. 높이 70m의 수직 빙벽. 오를수록 칼바람이 매섭다. 생명줄은 빙벽에 드리워진 자일(안전로프) 하나. 이미 시작할 때의 오그라든 담은 잊은 지 오래다. 아이스바일(얼음을 찍는 데 사용하는 장비)을 든 양손에 힘이 들어간다. 크램폰(빙벽용 아이젠)을 찬 빙벽화를 통해 발가락 끝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전해진다. 한발 한발 90도 각도의 빙벽에 붙어 수직상승을 계속한다.

오를수록 기쁨은 희열로 바뀐다. 천태만상 제각각 얼어붙은 빙벽을 조심스레 살핀다. 타격점을 정하고 아이스바일을 내리꽂는다. '쨍'하고 박히는 아이스바일의 느낌이 청량하다. 아이젠의 앞쪽 끝부분이 빙벽에 깊숙이 꽂히며 짜릿한 전율이 타고 든다. "낙빙" 갑작스런 고함소리에 바짝 몸을 빙벽에 붙인다. 얼음덩이 몇 개가 등뒤를 지나 엄청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날 목표는 구룡폭포 정상. 하지만 중간 정도 오르자 아래쪽에서 "하강"을 외친다.

지난 21일, 북녘땅 금강산 구룡폭포에서의 빙벽등반은 아쉬움이었다. 오후 2시에 하산을 해야 한다고 북측 안내원들이 몇 차례 주지시켰기 때문. 내일을 기약하며 장비를 거둬들였다. 하긴 오를 수 있다고 다 오른다면 싱거울 법도 하다. 때론 미련과 아쉬움을 남겨두는 것 자체가 인생 아닌가.

이날 구룡폭포 빙벽등반에 도전한 사람들은 대구등산학교 동계반 21기 수강생 21명과 강사들이었다. 이미 거창 금원산과 청송 얼음골 인공빙벽에서 두 차례의 실전훈련을 마친 터. 20일 아침 금강산에 도착해 높이 139m의 비봉폭포 빙벽에서의 훈련도 무사히 소화해냈다. 이날 역시 시간제약으로 비봉폭포 상단 10여m는 오르지 못했다. 이날의 훈련은 비봉폭포 아래쪽 100여m에서 이뤄졌다. 역시 까마득한 높이.

빙벽등반의 매력을 도전과 성취감이라고 하면 너무 상투적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보기에도 아찔한 빙벽에 매달리는 걸까.

전문가들은 여름철의 암벽등반과 함께 겨울철은 단연 빙벽등반의 묘미가 최상이라고 말한다. 아이스바일과 스크류(확보용 장비) 등 장비와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땀을 흘리며 빙벽 정상에 올랐을 때의 쾌감은 오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 특히 날씨와 기온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얼음을 고려해가며 적절하게 상황에 대처해야 하기에 성취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암벽등반은 정해진 코스로만 오르지만 빙벽등반은 자신이 길을 만들어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더 큰 매력이 있다.

하지만 빙벽등반 역시 안전이 최우선이다. 추락뿐만 아니라 낙빙에 의한 사고도 치명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구등산학교 최기환 훈련부장은 동계반 교육을 통해 "날씨와 기온에 따라 얼음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상급자도 주의를 게을리하면 사고를 당할 수 있다"며 "헬멧을 쓰고 배낭을 메는 등 낙빙과 추락 위험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 빙벽에 도전하려면 전문교육기관에서 이론과 실습을 완벽하게 익혀야 한다. 대구등산학교 등 각 산악단체에서 암벽과 빙벽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5주 정도 이론과 실습 등 집중교육을 받아야 한다.

글· 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사진·정재호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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