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삶은 계란 냄새가 난다. 어느덧 로토루아 근처까지 온 것이다. 로토루아는 타우포와 함께 북섬 최대의 지열지대로 '유황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온천으로 유명하다. 삶은 계란 냄새는 땅 밑에서 수증기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유황인 것.
먼저 로토루아 북동쪽에 위치한 '지옥의 문'을 방문했다. 곳곳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움푹 꺼진 땅 속에는 진흙이 부글거리며 끓고 있다. 처음보는 풍경이라 신기했지만 그 규모가 작은 편이라 아쉬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이틀 뒤 도착한 '와이오타푸 써멀 원더랜드'에서는 그러한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와카레와레와 지열지대'만큼 넓으면서도 '지옥의 문'처럼 진기한 풍경들이 보다 큰 규모로 펼쳐져 있다. 또 유황의 성분에 따라 형형색색의 온천들이 수증기를 뿜으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전체를 관람하려면 1시간 30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돌아야 할 정도로 산 전체가 지열지대이다. 원더랜드 입구 옆에는 실내에 자전거 여행객들을 위한 자전거 보관소와 라커룸이 완비돼 있다.
로토루아를 떠나 남쪽 타우포로 향했다. 계속되는 맞바람과 계속되는 오르막에 속도가 나질 않는다. 힘이 들어 고개를 떨구고 힘겹게 페달을 굴리는데 뭔가가 헬멧을 '퍽'하고 때렸다. 황급히 뒤돌아보니 까치같이 생긴 새 한 마리가 푸덕거리며 도망간다. 휘청거리는 자전거를 겨우 바로잡고 '녀석이 힘이 없어 떨어지다가 부딪힌건가?'라고 생각하며 다시 페달을 밟는데 그 새가 또 덤비는 것이다. 정면으로 돌진하기에 갑자기 뒤돌았더니 저 멀리 도망쳐 나무 위에 올라갔다. 이 새는 고개만 돌리면 뒤에서 공격해 약 500m가량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를 하듯 가야만 했다.
나중에 책을 보고 알았는데 이 새는 '투이(Tui)'라는 새로 우리나라의 까치처럼 뉴질랜드 전역에 서식하며 꽃에서 나는 꿀과 나무열매를 주로 먹는다고 한다. 아마도 이 새는 헬멧의 알록달록한 색을 보고 꽃이라고 착각해 돌격한 것으로 보인다. 헬멧에는 투이의 발톱에 찍혀 두 군데에 움푹 파인 흔적이 남았다.
엄청난 물줄기, 청명한 옥빛을 자랑하는 후카 폭포를 지나 타우포로 접어들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타우포 호수에서 도시의 지명을 따왔다. 호숫가에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를 보면 마치 바다와 같다.
저 멀리 우뚝 솟은 루아페후 산이 보인다. 여름인데도 산 정상 부근에는 온통 눈으로 덮여 있다. 산 정상까지 올라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막막해진다. 무릎도 또 아파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왕 고생을 각오한 몸, 다시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산 언저리 안내센터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오르막, 주변 외국인 관광객들이 연신 엄지를 치켜들며 응원해준다.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고 했던가? 힘겹게 중턱 부근 작은 바위산에 올라가니 눈앞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지구가 아닌 다른 혹성, 마치 화성의 표면처럼 황량한 풍경들이다.
미국의 그랜드 캐넌을 봤을 때보다 더 신비롭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모르도르'의 배경이 된 곳이라니 땀흘리며 올라온 보람을 느낀다. 자연 그대로의 거친 야성미가 넘치는 곳이다. 정상까지 오르지 못해 아쉽지만 여기서 와이토모 동굴로 발길을 돌렸다.
와이토모 동굴은 비가 많이 오면 동굴내부의 수위가 높아져 관람이 금지된다고 해 먼 길 달려온 게 허사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때마침 비가 그쳤다. 청명한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와이토모 동굴로 가기 전, 텐트 캠핑이 가능한 캐러밴 파크인 '홀리데이 파크'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요금은 6~15호주달러(5천~1만 원)로 다양하다. 개인용 그릇, 수저 외에 모든 취사도구가 갖춰진 공동 취사장을 비롯해 샤워장, 세탁실, 인터넷 방, TV라운지, 독서실, 미니골프장, 수영장 등의 모든 부대시설이 갖춰진 곳도 많다.
김정문(31·자전거타기운동연합 대구본부 교육팀장)
후원 : GoNow여행사(로고 및 연락처)
사진: 1. '와이오타푸 써멀 원더랜드'내의 '화가의 파레트'란 제목의 지열지대. 제목처럼 각종 유황천의 색상이 마치 파레트 위에 짜놓은 물감과 같다 2. 마오리족의 전통 춤. 실제 축제할 때 추는 춤이 아니라 관광용으로 변해버리지 않을까 아쉽다 3. '루아페후 산'에서 내려다본 풍경. 멀리 용암이 분출된 듯 눈이 쌓인 '나우루호에 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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