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혈병 앓는 초교 2년생 이상철군

"엄마, 병실 나가 학교 가고 싶어요"

개구쟁이 상철(8·경북 김천 증산초교 2년)이는 병실 밖을 나가고 싶어 안달이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마음껏 뛰놀다가 좁은 병실 안에서만 지내야 하니 답답할 법도 하다. 조금만 더 참자며 달래보지만 답답한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조선족이다. 고향은 중국 흑룡강성 천리시. 지난 1996년 김천시의 소개로 바다를 건너온 남편(이성우·40)과 처음 만났다.

남편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 말수는 적고 무뚝뚝했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착한 사람이었다. 김천시가 맞선을 주선한 이들은 모두 14명. 그해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곧 상철이가 태어났다. 시어머니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농사일을 하러 집을 나서는 남편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남편과 나를 이어주는 소중한 끈이 생겼다.

뒤이어 유진(5·여)이와 상원(2)이도 세상 밖으로 나왔다. 우리와 시동생의 결혼에다 농사를 짓느라 빌린 돈 등으로 지게 된 빚만 수천만 원. 게다가 사람 손이 많이 가는 데 비해 그만한 소득은 기대하기 힘든 것이 농사일. 하지만 함께하는 가족이 있어 행복했다. 담배농사를 열심히 짓다 보면 결국엔 일이 잘 풀릴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말 꿈이 무너졌다. 날이 추운데도 상철이는 덥다고 야단이었다. 잠을 자면서 베개가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머리와 목이 아프다고 했다. 처음엔 감기인 줄로만 알고 약을 사다 먹였는데 얼굴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붓는 등 상태가 점점 심해졌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알려준 병명은 백혈병. 눈앞이 캄캄해졌다.

반찬투정 없이 아무것이나 잘 먹던 아이가 요즘은 밥이 먹기 싫다고 투정이다. 항암치료를 받는 탓에 속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잘 먹지 못해 기운이 없을 텐데도 가만히 누워있지를 못하고 병실 안을 돌아다닌다. 언제 다 나아 학교에 갈 수 있느냐고 물을 때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는 내 처지가 한심스럽다. 자식이 아픈데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상철이에게 미안할 뿐이다.

얼마 전엔 유진이와 상원이가 다녀갔다. 동생들을 본 상철이의 낯빛이 환해졌다. 시골에서 자라 침대를 처음 본 아이들은 침대 위에 올라가 깡충깡충 뛰며 법석을 떨었다. 그러다 상철이 팔에 연결된 링거의 호스가 빠져버렸다. 남편에게 모두 한바탕 혼이 났지만 상철이에겐 잠시나마 즐거운 하루가 됐다.

이제 2월. 이맘때면 담배모종을 키우기 위해 비닐하우스 안에 씨를 뿌려야 한다. 남편은 올 한해 농사를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다. 농사일 중에서도 사람 손이 가장 많이 가는 것이 담배농사. 모종이 자라면 한 포기씩 심는 것에서부터 담뱃잎이 노래지면 하나하나 따서 말려야 하는 등 일 년 내내 쉴 틈이 없다. 그런 형편임에도 내가 상철이 옆에 붙어 있으니 난감한 상태인 것. 나는 과감하게 한두 해 농사를 포기하자고 했다. 아이가 낫는 것이 먼저 아닌가.

상철이에게 중국말과 한자를 조금씩 가르쳐온 권영숙(37·여·경북 김천시 증산면 금곡리) 씨. 하나라도 더 배우게 하려는 욕심에서였다. 하지만 이젠 아프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제 치료를 받기 시작한 터라 상철이가 어떻게 될지는 의사선생님들도 장담을 못해요. 하지만 희망은 버리지 않습니다. 병원비도 수백만 원이 나왔겠지만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상철이가 병원에 입원하던 날, 같은 병을 앓던 아이가 다 나아 집으로 돌아가는 걸 봤거든요. 상철이도 그런 날이 오겠지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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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덟 살 상철이는 병실 밖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 고향의 산도, 물도 그립고 동생들도 보고 싶다. 어머니 권영숙 씨는 그런 상철이를 달래는 것이 힘겹기만 하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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