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세계문화유산, 등록이 능사인가

최근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정부, 지자체 할 것 없이 툭하면 역사운운하며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시키자는 얘기이다. 물론 등록되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등록 숫자 늘리는 것에만 몰두해서는 곤란하다. 거기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관리, 보수유지의 책임이 해당국에 있는 것이다.

세계유산조약에 의한 세계문화유산은 작년 연말 현재 812건이다. 우리나라는 그중 7개를 갖고 있다. 그것은 석굴암과 불국사, 팔만대장경을 앉고 있는 가야산 해인사, 종묘(1995), 창덕궁, 화성(1997), 고창·화순·강화의 지석묘군적(群跡), 경주역사지역군(2000) 등이다. 북한의 경우는 고구려고분군(2004) 하나가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 세계문화유산 제도 중에는 '위기유산(Danger Heritage)'이란 항목이 있다. 자랑스러운 유산이 걱정거리 유산으로 재보호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35건이 위기유산 목록에 올라 있다. 812건 중 35건이나 되는 것이다.

그러면 위기유산은 왜 생겨나는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무지막지한 개발 그리고 무모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개발이란 것은 유사 이래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강대국들은 역사상 수많은 전쟁에 개입, 역사도시를 황폐화시켜 왔다. 여기에 최근에는 종교 간의 대립, 테러도 이어지고 있다.

개발과 전쟁, 이는 문화유산의 재앙일 뿐이다. 많은 인류유산이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개발과 전쟁의 위험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경종만 울릴 뿐이지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조차 예를 들면 전란으로 파괴가 진행되는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계곡의 문화경관, 외래종에 의해 생태가 붕괴되는 조류보호구역 등 리스트를 등재시켜 보호(?)에 나서고 있는 정도의 일밖에 못하고 있다.

위기유산 중 우리의 눈을 끄는 것 두개가 있다. 좀 의외이긴 하지만 문화선진국이라는 유럽의 것이다. 독일 '쾰른 대성당'과 오스트리아 '빈 역사지구(Historic Centre of Vienna)'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199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는데 2004년 위기유산으로 재등록된 것이다. 세계의 자랑거리에서 세계의 걱정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독일 쾰른 대성당은 원래 600년 이상된 성당 자체의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 성당 주변에 들어선 새 건축물 때문에 성당에 시각적 장애가 생겼다는 이유로 위기유산이 된 것이다.

빈 역사지구도 마찬가지이다. 그곳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제도(帝都), 그리고 음악의 도시란 이름으로 등록된 것이다. 그러나 그 후 도시 주변의 일부 난개발로 말미암아 위기유산으로 전락한 것이다.

필자는 최근 그 두 곳을 찾아가 본 적이 있다. 역시 전에 보았던 그곳 풍경과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원흉은 새로운 빌딩들이었다. 쾰른 대성당은 쌍탑 건물인데 그 탑 주변 가까이 새 빌딩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카메라 앵글 주위로 빌딩이 끼어들어 온 것이다. 빈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름다운 옛 도시에 빌딩이 들어 차 분위기를 바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이다. 현재 우리의 세계문화유산 대책은 무대책이라 할 수 있다. 등록만 시켜 놓고는 방치하고 있다.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것이다.

경주, 화성 주변 개발, 창덕궁, 종묘 담장 변에 민가 증개축 난립, 이런 것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상태로라면 우리의 세계문화유산이 위기유산으로 낙인찍힐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면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황(黃) 박사 시리즈'가 되는 일이다.

쾰른과 빈은 아마 너무 유명한 도시이고 유럽에 있기 때문에 더 빨리 문제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네스코 본부가 파리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것은 그들의 레이더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어 오히려 다행스런 것인지 모르겠다.

김정동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