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전철을 타고 출장을 가는 길이었다. 자리에 앉고 보니 유치원생 정도의 어린이 예닐곱 명이 엄마 서너 명과 함께 있었다. 그런데 주고받는 대화가 영어였다. 우리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돈도 제법 있고 학벌도 괜찮은 가정으로 아이들에게 소위 '조기 영어교육'을 시킨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이들 떠드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큰 소리로 웃으며 통로에 뛰어다니고…. 그런데 엄마들은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영어로 대화하고 전화를 하며 소음공세에 한 몫을 했다. 역무원이 와서 주의를 주어도 그때뿐이었다. 조용히 생각할 게 많은 나는 그만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영어 잘 하는 것도 좋지만, 인성교육부터 좀 시키지"라는 말이 목젖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꿀꺽 삼켰다.
얼마전 식당에서의 낭패가 떠올라서였다. 손님과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방석을 깔고 자리에 앉자마자 대여섯 살가량의 아이들 서너 명이 우리에게 장난감 총을 겨누었다. '땅땅땅'. 식당 방안과 마루를 마구 헤집고 다니며 총싸움이 한창이었다.
"조용히 하고 엄마에게 가라"고 타일렀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음식이 나오고 식사를 하고 있는데도 바로 옆에서 뒹굴며 고함을 질러댔다. 나와 함께 온 점잖은 손님이 보다못해 일갈을 했다. "조용히 해 이놈들!"
그런데 잠시 후 서른 살이나 되었음직한 여자 한 명이 실눈을 뜨고 다가왔다. 그리고는 허리에 손을 꼬나 올린 채 더 크게 고함을 질렀다. "왜 남의 아이들에게 큰 소리질입니까."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온 식당 안이 어수선해진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영국에서는 어린이를 데리고 레스토랑에 갈 때는 예절교육부터 시킨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언행이라고 한다. 영어만 잘하면,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OK인 나라.
국가와 사회보다는 자기가 속한 조직을, 조직보다는 자기 자신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가르치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10년 동안 영어공부를 하고서도 원어민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지 못하는, 소위 시골의 유교적인 집안에서 성장하고서도 버릇없는 아이들에게 꾸지람 한번 하지 못하는 나도 교육을 잘못 받았다.
신태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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