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세계수준 사전 만들자

1928년 6월 6일 오후 8시 영국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 옆 필립 하드윅 궁전. 이날 저녁 만찬 행사에는 세 차례나 총리를 역임한 스탠리 볼드윈(Stanley Boldwin) 총리를 비롯해 당시로서는'그때 이후 그처럼 많은 지성인이 한자리에 모인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국의 내로라 하는 기라성 같은 인물 150명이 모였다. 그 모임은 '그런 종류로는 역사상 최고의 업적'이라는 사업의 완성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것.

그 '최고의 업적'이란 지난 71년의 긴 세월을 거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1만5천490쪽에 41만4천825개의 표제와 182만7천307개의 예문을 갖춘 10권짜리'옥스퍼드 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을 두고 한 말.

이 사전에 대해 볼드윈 총리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사막의 섬에 떨어지게 되어 딱 한 작가의 작품만 가져갈 수 있게 되는 그런 선택의 때가 온다면 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선택하겠다. 우리의 역사, 우리의 소설, 우리의 시, 우리의 드라마, 이 모든 것이 이 한 권의 책 안에 다 들어있다. 나는 아무리 외로운 곳에 가더라도 이 사전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역사상 최고의 업적이다"라고.

1857년 영어의 어휘 수와 발달 및 역사과정 등을 밝혀줄 사전의 필요성을 느낀 '언어학회'라는 단체가 사전편찬 작업에 착수, 길어도 10년이면 될 것으로 생각했던 사전은 결국 71년 만에 대탄생을 맞게 됐다고 언론인 출신의 사이먼 윈체스터 씨는 자신의 책 '영어의 탄생-옥스퍼드 영어사전 만들기 70년 역사'에서 적고 있다.

갑자기 옥스퍼드 사전 이야기를 꺼낸 것은 우리나라 사전 편찬작업의 무성의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사전은 국력의 바탕이며 문화발전의 원동력이라 한다. 때문에 나라마다 그 역사와 문화, 정신 등 모든 것을 망라한 사전이 있다. 우리도 '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우리말 집대성 사전이 있다. 7년에 걸쳐 지난 1999년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편찬, 발간한 사전은 적잖은 문제점을 드러내 부실편찬이란 질타 등 말이 많았다.

특히 외국어 사전 경우 심각성이 이에 못잖다. 국민이 목을 매는 영어와 관련된 사전들의 문제는 좋은 사례. 영어 단어번역이 사전마다 다르다. 표기도 서로 다른 등 오류투성이어서 올바른 우리말 교육이 되레 위협받을 정도다. 쉬운 우리말 대신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하거나 일본의 영어 사전을 베낀 듯한 흔적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성균관대 이재호 명예교수가 지은 '영한사전비판'이란 책에는 우리 영어사전의 오류들이 잘 설명돼 있다. 그는 그 오류들을 12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순수 우리말이 빠진 점(husband를'지아비'대신 남편으로, other를'남'이란 말 대신 '타인'으로 옮기는 등)을 비롯해 실제 쓰는 번역어가 많이 빠진 점, 장황한 설명, 중요 단어의 표제어 누락, 내용상 오류 등이 그것.

오늘날'영어광풍(狂風)'으로 우리말사전은 팽개쳐도 영어사전은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떠받드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런 엉터리 영어사전은 하루빨리 고쳐져야 한다. 게다가 올 하반기부터는 초등학교 1년생부터 영어수업이 진행되면 올바른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잘못된 말부터 익히게 될까 걱정이다.

과거 먹고살기 힘들고 여력 없어 남의 것이라도 베껴야만 했던 시절도 있었겠지만 이젠 제대로 시대가 달라졌다.

마침 최근 우리 국어정책을 총괄하는 국립국어원의 새 원장으로 취임한 경북대 이상규 교수가 이런 우리 사전들의 문제점들 고치겠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특히 표준국어대사전을 저학년 및 고학년, 대학생 대상의 교육용 사전으로 편찬, 보급하고 외국어 사전편찬에도 국어학자의 참여 필요성에 공감한다니 새 외국어 사전이 기대된다. 세계무역 10위권에 전세계 6천여 개 언어들 중 열두 번째로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한국어에 걸맞은 그런 사전의 탄생을 기다려 본다.

정인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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