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민을 비롯한 지역민의 기개를 온 세상에 드높인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경제독립 없이 온전한 주권국가가 될 수 없다"는 100여 년 전의 간절한 외침은 오늘날 튼튼한 산업·경제 기반을 갖추지 않고서는 '지역발전'이나 '세방화(지방화와 세계화)' '교육문화도시' '동남권 수도'와 같은 비전이 모두 헛구호에 불과하다는 뼈아픈 자성으로 남아 있다.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일본제국주의를 물리쳐 독립을 얻었고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대구·경북 지역민들에게 우리 선조들이 위기극복을 위해 보여주었던 국채보상운동의 정신과 기개가 더욱 그리워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 100여년 전에 어떤 일이?
1907년 1월 29일 대구지역 애국계몽단체인 광문사문회 명칭을 '대동광문회'로 개칭하기 위한 특별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서상돈은 "일제의 차관을 갚지 못하면 국토라도 내줘야 할 판이니 2천만 민중이 석 달간 담배를 끊어 그 돈으로 국채를 갚자"고 전격 제의했다. 회의 참석자들은 만장일치로 동의했고, '국채보상취지서'를 작성했다.
"···나라가 망하면 민족이 망한다는 것은 애굽(이집트), 파란(폴란드), 월남 등의 경우에서 입증된다. 피눈물로 원하노니 대한신민들께서는 널리 이 글을 보고 서로 권해 한 사람도 그 뜻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하자···."(국채보상취지서 일부)
이 취지서의 핵심은 한마디로 더이상 무능한 정부에 국가의 존망을 맡기지 말고 국민들이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 달 남짓 뒤인 2월 21일 대구 북문밖 칠성리(현 대구시민회관 자리)에서 처음 열린 국채보상대회에는 수백 명의 시민이 몰렸다. 이날 대한매일신보는 '2천만 인중(人衆)으로 하여금 3개월 한하여 남초 흡연을 폐지하고 그 대금으로 20전씩 징수하면 계산하여 거의 1천300만 원 됩니다.··· 아! 우리 2천만 동포 중 진실로 일호(一毫)의 애국사상이 있는 자이면 반드시 두말 하지 않을 것입니다.…"는 호소문이 실렸다. 이로 인해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전환점이 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데다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당하는 위기를 맞았고, 민족경제를 파탄시키려는 일제의 차관(借款) 공세로 정부는 1천3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 이 금액은 대한제국 정부의 1년 세입예산 1천318만여 원과 맞먹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남녀노소, 황제에서 기생까지 전 국민이 참여한 이 운동은 일제의 강압과 방해공작으로 1년 반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국채보상운동 정신은 3·1운동으로 명맥을 이었고, 13년이 지난 1920년 8월 평양에서 시작된 물산장려운동으로 '경제자립을 통한 국권회복'이라는 뜻이 되살아났다.
▨100여 년이 지난 대구·경북은?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난 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발상지인 대구는 어떤 모습일까. 새해를 맞아 한국갤럽이 16개 시·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거주지 만족도'와 '지방자치 10년' 및 '시·도 지사' 평가를 조사한 결과, 대구는 3부문 모두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15개 시·도 모두 '살기 좋다'는 응답이 '살기 나쁘다'보다 더 높았는데, 유독 대구만 '살기 나쁘다(52.8%)'가 '살기 좋다(41.0%)'보다 많았다.
대구시민의 이 같은 절망과 좌절감(?)은 통계청의 지역내총생산(GRDP) 발표에서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은 1993년 이후 꼴찌 행진을 계속하고 있고, 전국 16개 시·도 중 유일하게 1천만 원을 밑돌고 있다.
그러나 대구의 1인당 민간소비지출 수준은 98.2(전국=100.0)로 서울(119.8)과 부산(101.0)에 이어 3위이다. 삶의 질이 생산이 아니라 소비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구가 살기 나쁘다'는 대구시민의 평가와 불일치가 생긴다.
전문가들은 "경북의 고소득자들이 대구에서 소비함으로써 대구의 소비수준이 높아진 반면에 산업기반이 취약한 대구에 사는 많은 서민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생겨난다"고 분석했다.
대구경북연구원 홍철 원장은 "2004년 경북의 명목 총생산은 전년보다 14.2% 증가한 56조6천98억 원으로 전국평균 7.7%보다 훨씬 높은 성장률을 보였지만, 구미와 포항 등 일부를 제외할 경우 경북의 낙후도 역시 심각하다"면서 "특히 수도권 공장 신·증설 허용으로 최대 첨단산업기반인 구미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홍 원장은 "100여 년 전 국권상실의 위기 속에서도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다'며 떨쳐 일어선 불굴의 정신을 이어받아 대구와 경북 도시들이 가진 각자의 강점을 살려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협력하는 것이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오늘날에 되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사진: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1907년 무렵(서상돈 선생은 왼쪽 두건 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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