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1932~2006) 이전에 박현기(1942~2000)가 있었다."
고 박현기(사진) 씨는 고 백남준 씨가 국내에 소개되기 전인 1970년대 중반부터 비디오작업을 시작했다.
국내에 비디오나 영상매체작업이 전무하다시피하던 당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 비디오아트 발전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1981년에는 트레일러에 거울이 박힌 커다란 돌덩이를 싣고 대구 도심지를 지나는 비디오 설치&퍼포먼스 작업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1998년 문예진흥원 선정 한국미술기획초대전 초대작가로 뽑혀 '우울한 식탁' 시리즈, '만다라' 등 일련의 작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상파울루 비엔날레(1979), 파리 비엔날레(1980),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 비디오 특별전(1999), 일본 가마쿠라화랑 초대전(1999) 등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대구미술의 위상을 드높였다.
고 박현기의 작품은 물질과 정신 사이의 균형을 통해 동서양 세계관의 조화를 표방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일본 아이치현 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고 박현기는 "변하지 않으면 몸살이 납니다"라며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열정을 보여주다가 2000년 지병으로 향년 58세의 나이로 숨졌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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