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영화 같은 죽음.'
영화감독 김기영이 1998년 2월 5일 새벽 자택 화재로 숨졌다. 영화잡지 KINO(당해 3월호)는 특집에서 그의 죽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재조명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새롭게 작품 활동을 펼치려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생인 김 감독은 인생 여정도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어린 시절엔 미술에도 재능을 보였고, 대학에서는 의학을 전공했다.
특이한 전력만큼이나 작품 세계도 독특했다. 김수용·유현목·신상옥·이만희 감독과 다르게 엽기적인 소재와 이색적 표현법으로 훗날 '사이코스릴러'라는 장르의 구축자로 칭송받게 됐다. 대표작인 '하녀'(1960)는 하녀의 유혹으로 불륜을 저지른 뒤 파멸해가는 가장의 모습을 그려냈다. 시대상황과 중산층의 욕망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부산 피란 시절 선배 오영진 씨가 맡고 있던 '대한 뉴스'를 보면서 영화라는 매체를 알게 된 뒤 자신이 직접 대본을 쓰고 촬영해 서울 수복에 관한 독특한 문화영화를 만들었다.고인은 가고 없지만 여전히 '작가주의 대표주자'로 손꼽히고 있는 김 감독이다.
▲1851년 한말 의병장 임병찬 출생 ▲1992년 북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정식 승인.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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