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의 각 브랜드별 의류매장을 관리하는 사람을 일컬어 '숍 매니저'라고 부른다. 대개 업계에선 '숍마'라는 줄임말로 통하는 이들은 말하자면 백화점 매출의 첨병인 셈이다. 백화점의 경우 의류매장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받기 때문에 전체 매출액이 높아질수록 백화점 몫도 커진다. 때문에 유능한 숍마들이 많을수록 수익이 커지기 때문에 브랜드는 물론 유통업체끼리도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질 정도다. 얼핏 화려해보이는 '숍마들의 세계', 그들의 삶 속으로 잠시 들어가보자.
숍마는 말 그대로 매장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람이다. 숍마들의 지위도 브랜드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브랜드 소속 직원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종의 '소사장제'처럼 매장 직원들의 월급까지 직접 챙기는 숍마도 있다. 후자의 경우 숍마들은 총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자기 몫으로 받아간다. 보통 자기 월급만 받을 경우는 매출액의 3~5%, 직원 월급까지 함께 계산할 경우엔 10% 이상이 숍마 몫으로 책정된다. 월 매출액이 1억~2억 원에 이르는 톱 브랜드의 경우, 최상위 숍마의 연봉은 5천만~1억 원에 이른다. 물론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자리를 옮길 경우엔 이보다 좋은 조건으로 별도 계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
화려해 보이는 숍마들의 세계. 하지만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억대 연봉을 챙겨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결코 쉬울 리 없다. 롯데백화점 시슬리 매장의 강모숙(37) 숍 매니저. 전국 57개 시슬리 매장 중에서 항상 매출액 6, 7위를 차지하는 최우수 매장의 책임자다. 작년 말엔 전국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2세 때 우연한 계기로 유통업계에 발을 내디딘 뒤 결혼 후 출산과 육아 때문에 잠시 쉰 기간을 빼면 10년을 훨씬 넘게 의류매장에서 근무했다. 매니저로 활동한 기간만 10년 가깝다. 상당히 빠른 시간에 매니저 자리까지 오른 셈. 그만큼 고객 흡인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현재 관리 중인 VIP급 고정고객만 무려 500명. '관리'라는 말이 다소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정성을 쏟는다는 의미다. 수시로 전화나 메일을 통해 안부를 묻고 고객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롯데 대구점 오픈과 함께 시슬리 매장에서 근무했지만 이전엔 서울에서도 활동했고, 그러다보니 10년 넘게 거래하는 알짜배기 단골도 생겨났다.
"선물 공세를 편다거나 옷을 특별히 할인해 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런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죠. 대신 언니, 동생처럼 고객과 친해지려고 노력합니다. 옷을 판다기보다는 정성을 파는 거죠. 일부러 서울에서 카달로그를 보고 저에게 옷을 주문하는 고객이 있을 정도입니다. 문경에서 차를 타고 2시간 넘게 달려와 옷을 사주는 고객이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죠."
강씨처럼 단골을 몰고다니는 특급 숍마의 경우 백화점 영입대상 1순위이다. 이들 특급 숍마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백화점 매출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정도. 따라서 백화점 측은 고객 못지않게 숍마들에 대해서도 극진한 대접을 한다. 특급 숍마가 자리를 옮기려 한다는 정보가 입수되면 CEO까지 직접 설득 작업에 나설 정도다.
대백 프라자점 'EXR' 매장의 복현미(33) 숍 매니저는 연간 18억~20억 원 매출을 올리는 말 그대로 특급 숍마. 아직 30대 초반이지만 서비스업계에 몸 담은 지 벌써 15년째를 맞고 있다. 지난 1991년 당시 19세에 동아백화점 본점 여성매장에 입사한 뒤 당시 매니저의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고 21세에 백화점 최연소 매니저에 오른 인물. 여성복을 다루던 복씨가 당시로선 생소한 '캐포츠'(캐주얼과 스포츠를 합친 운동복처럼 생긴 평상복) 브랜드인 EXR을 접한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프라자점에 EXR이 입점한 것은 지난 2002년 4월. 전국 백화점 중 2호 매장이자 지방 백화점 1호 매장이었다. 그만큼 생소한 브랜드였다. 오픈 당시 복씨의 연봉은 기존 연봉보다 절반가량 낮은, 동종업계 최하위 수준이었다. 하지만 당시 EXR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복씨는 3개월 만에 파트내 1등, 6개월 만에 전국 1등을 해 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힐 만큼 도전 의지가 강했다. 전국 1위는 아직 달성하지 못했지만 프라자점 EXR 매장은 전국 54개 백화점 점포 중 5위를 기록할 정도.
"한번 맺은 고객과의 인연은 결코 잊지 않습니다. 반품을 하거나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도 처음 상품을 팔 때처럼 똑같이 대하죠. 현재 우리 매장에 근무하는 직원 6명이 모두 3, 4년 이상 함께 한 식구라는 점도 그만큼 인간적인 친근함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대구백화점을 대표하는 세일즈 왕이 되고 싶습니다."
이처럼 톱의 자리에 오르는 숍마들의 공통점은 바로 '정성 마케팅'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긴다. 평소 관리하는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 때도 결코 상품 구매를 권유하지 않는다. 다만 관심과 애정을 표현할 뿐이다.
동아 쇼핑점 아이잗바바 매장의 권애숙(41) 숍 매니저도 지극 정성을 고객 응대의 모토로 삼고 있다. 의류 매니저로는 남들보다 훨씬 늦은 30세에 백화점에 입문한 권씨는 입사 2개월 만에 바겐세일때 매출이 급상승하면서 곧바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6개월 뒤에는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올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고, 다른 브랜드로 옮기면서도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서울까지 가서 면접과 연수를 받아야 했지만 본사 담당이 직접 대구로 내려와 면접을 하고, 연수도 특혜를 받을 정도.
권씨의 성공 비결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동시에 누구도 하기 힘든 일. 값이 비싸다고 항의하는 고객에게도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제 값을 하는 믿을만한 상품'이라는 차분한 설명을 곁들인다. 간혹 고객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살 경우 권씨는 과감하게 다른 옷을 권한다. 행여 고객이 불쾌할 수도 있지만 옷을 산 뒤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매장에서 그렇게 까다롭게 굴던 고객도 직접 옷을 배달하러 집으로 찾아가면 그렇게 자상할 수가 없습니다. 차 한 잔 얻어마시고 나올 때면 가장 고마운 단골이 되죠. 물론 고객이 정성을 믿지 않고 외면할 때는 힘도 들지만 저를 보고 찾아오는 다른 고객들을 생각하며 각오를 다집니다."
의류매장에는 그날 그날의 매출액이 컴퓨터에 뜬다. 바꿔 말하면 매일 매일 성적이 매겨지고 등수가 발표되는 셈이다. 피를 말리는 시간들이다. 이웃 매장에는 손님이 북적대는데 자기 매장은 썰렁하다면 침이 바짝바짝 마른다. 이런 시련을 딛고 일어서야 톱 숍마가 될 수 있다. 한 숍마는 이렇게 말했다. "10시간 넘게 꼬박 서 있고 나면 다리에 감각도 없어져요. 그런데 매장 문 닫을 시간이 돼서 한 단골이 찾아와서 '당신 때문에 여기 옷 사러 왔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나면 울컥할 만큼 감동이 느껴집니다. 바로 이런 '맛' 때문에 숍 매니저를 하는거죠. 어쩌면 숍 매니저는 타고난 직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사진: 롯데백화점 대구점 시슬리 매장의 강모숙 숍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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