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황당(城隍堂), 조왕신, 배 고사, 풍어제, 짬 고사, 영등….'
무속신앙도 가지가지지만 모두 우리 민족의 생활속에 뿌리내려 전해온 토속 민간 신앙이다.
이러한 신앙들은 공업화, 도시화로 점차 퇴색되는 추세지만 성황당만큼 지역주민들의 애환과 생활의 자취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도 드물다.
마을 어귀나 입구에 있어 마을에 들어오는 액, 질병, 재해, 호환 등을 막아주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곳, 웬만한 어촌마을에는 아직까지 성황당에 대한 경외감이 그대로 남아있다.
◆천연기념물 향나무가 신목
울진 죽변면 후정리 성황당도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 곳 중의 하나다.
특히 이 곳 성황당 옆에는 500년 넘는 향나무가 당목인 신목(神木)으로 받들어지고 있어 보기에만도 신령스런 느낌이 든다. 대개 신목은 느티나무나 팽나무, 고욤나무 등이 주종이다. 이들은 수령이 길고 수세가 왕성한 수종으로 정자나무로 이용된다. 하지만 죽변 당목은 지역에는 군락지가 없는, 그것도 세속의 풍파를 모두 겪은 듯한 형상을 한 향나무란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1964년 1월 31일 국가로부터 천연기념물로 지정(158호)된 이 향나무는 밑동이 2개로 갈라져 있고 높이가 자그마치 11m나 돼 둘레는 어른 네댓 사람이 안아도 남을 만큼 굵었다.
이 마을 터줏대감 전학수(81) 할아버지는 "이 일대에는 향나무가 없어. 향나무가 많이 있는 울릉도에서 자라던 것이 파도에 떠 밀려와 이곳에서 자라게 됐다는 전설도 있지. 모두들 그렇게 믿고 있고 또 집안에 큰 일이 있으면 이곳에 와서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안내를 맡은 전찬억 죽변면 총무계장은 "수령이 오래 돼 가지 처짐 방지를 위해 몇 년 전 지지대를 설치하기도 하고 외과수술을 몇 차례 하기도 했다"며 "군에서는 민간인 명예관리인을 위촉하는 등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했다.
◆까다로운 제관 선출
신목 옆에 자리한 성황당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로 벽체는 나무를 사용하였고 지붕은 맞배 기와다. 기둥은 가공하지 않은 향나무를 그대로 사용해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려는 조상들의 지혜를 엿보게 한다.
1935년 죽변 후릿개 산 밑에 있던 것을 500년 향나무 옆으로 옮겨 와 지었다(울진군지)는 이 성황당은 죽변 어촌계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 하루 전날 자시(밤 11시~새벽 1시)에 동사(洞祠)로 유교방식의 제사를 지낸다.
어촌계장 방학수(63) 씨는 "설이 지나면 어촌계 총회에서 제관 1인과 축관 1인을 선출하지요. 그런데 조건이 여간 까다롭지 않아요"라고 했다.
우선 제관은 나이가 지긋한 사람, 상사(喪事)가 없는 집안의 사람, 남의 초상에 간 일이 없는 사람, 근래에 출산을 하지 않은 집안의 사람 등의 요건을 갖춘 사람 중에서 선발을 한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무속인을 찾아 이들의 신수를 묻는 검증 과정도 거친다.
또 유고가 생겼을 경우 그 사람은 자진 사퇴하고 새로 제관을 선출한다. 이렇게 선출된 제관은 자신의 집과 성황당에 금줄을 두르고 황토를 뿌려 제삿날까지 잡인의 출입을 삼가게 하는 한편 목소리도 부드럽게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제물은 제사일 2, 3일 전에 죽변이나 울진장에서 마련하는데 첫닭이 울기 전에 집을 나선다고 했다. 첫닭이 울면 신이 돌아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물건 값도 흥정하지 않고 달라는 대로 준다. 사전에 시비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조상들의 경건한 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비용 때문에 풍어제 대신 성황제로
제사는 유교식으로 하되 과거에 비해 많이 단출해졌다.
방 계장은 "10여 년전만 해도 규모가 컸고 마을 전체가 주관이 돼 4천만~5천만 원을 들여 3년에 한 번씩 풍어제를 지냈다"며 "최근들어 사람들의 인식이 차츰 바뀌고 비용도 만만찮아 군 어촌계에서 맡아 100여만 원 범위내에서 지낸다"고 했다.
향나무 관리인 김진하(71) 할아버지는 "옛날에는 좋은 어물이 잡히면 성황고사에 쓰라고 희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좀 그래. 떡도 옛날엔 백설기를 직접 집에서 시루에 했는데 지금은 방앗간에 맡기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건 제수를 만들 때 간을 보지 않는 것 뿐일걸"이라고 했다.
제사는 강원도 삼척 대진의 경우, 무당을 불러 부정치기를 하고 독경을 하며 고사를 주도하는 것과 달리 죽변은 제관 중심으로 유교식으로 하며 성황당에서 소지를 올린 후 제관과 아헌. 종헌. 집사가 따로 바닷가로 나가 용왕제를 지낸다.
남도진(79) 할아버지는 "어민 개인들은 어촌계 성황제 후에 따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지만 평상시에 수시로 성황당을 찾아 기도를 하고 배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고 했다.
◆성황당의 영험함
주민들 사이에 전해오는 성황당의 영험당도 적잖다.
황진성(71) 씨는 "성황당이 사람을 많이 구했어. 일제 강점기 땐 밀주를 금했고 세무서나 지서에서 불심검문을 나왔는데 이때는 동민들이 술 단지를 황급히 성황당에 갖다 놓지. 순사들이라 해도 감히 성황당엔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얘기를 어릴 적 들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범윤(71) 씨는 "옛날엔 크든 작든 집안에 일만 생겨도 성황당을 찾았지. 요즘이야 세월이 하도 바뀌어 그렇지 성황당이 정말 만병통치약이었다"고 했다.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msnet.co.kr
사진:남도진 할아버지 등 죽변의 어르신들이 성황당과 신목인 향나무를 둘러보며 이에 얽힌 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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