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밤새워 원고를 써도 '밥'이 되기는 어렵다. 요즘은 명예마저 밀려나고 있다. 돈과 명예를 누리는 인기 작가도 없지 않지만, 그런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이' 극히 드물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명작은 대부분 가난과 고독 속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독이 될 수도 있는 돈이라고 해도 작가라고 해서 안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중견 소설가 이인성(李仁星'53) 씨가 창작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서울대 불문과 교수직을 사임(명예퇴직 신청)해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과는 달리 전업 작가들이 대부분 생계가 어려워 힘이 닿으면 대학 강단에 진출하는 세태에 비춰 이례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문학이 주변부로 밀려나고, '죽어간다'는 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을 떠올린다면 분명 '역주행'이라 할 수 있다.
◇한국외국어대와 서울대에서 23년 동안 강단에 선 그는 아직 정년이 12년이나 남았다. 그러나 그 길을 버렸다. 글쓰기의 욕망 때문에 이미 5, 6년 전부터 강단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나 부친(이기백, 역사학자'전 서울대 교수)이 투병 중이어서 결행을 미뤘다가 세상을 떠난 뒤 마음을 정리하게 됐다고 한다. 게다가 부인 심민화 덕성여대 불문과 교수도 때를 같이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고 한다.
◇1980년 중편소설 '낯선 시간 속으로'를 '문학과 지성'에 발표하면서 등단한 그는 소설집 '한없이 낮은 숨결' '강어귀에 섬 하나', 장편 '미쳐 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등을 통해 개성적인 세계를 펼쳐 왔다. 하지만 '실험적' '전위적'이라는 평가가 그렇듯이 열광하는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는 편이어서 더욱 의아해질 수밖에 없다.
◇이인성 씨는 앞으로 소설 '악몽' 연작을 완성하는 등 '더 못 참을 지경'이던 소설 창작에 전념하는 한편 계간 '문학'판' 편집인으로 문예지를 만들고, 개성적인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도 힘쓸 각오라고 한다. 특히 "문학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좇아야 한다"는 그는 "그래야만 문학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이번 '선택'을 했다니 새 출발에 자못 기대가 커진다. 아무튼, 그가 믿는 문학의 힘이 높고 깊어지기를 바란다.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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