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핀투여행기

페르낭 멘데스 핀투 지음/ 이명 옮김/ 노마드북스 펴냄

"우물안 개구리는 우물 밖의 넓은 세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페르낭 멘데스 핀투(1510?~1583)가 21년간 망망대해를 떠돌며 아시아, 아프리카 각지에서 경험한 것들을 저술한 책 '편력기(핀투여행기의 포르투갈어 원제)'를 출간했을 때 유럽의 독자들은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와 함께 이 책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 놓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신나는 여행담 또는 꾸며낸 모험이야기,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동양의 먼 나라 외해를 전전하는 해적싸움을 이야기한 유럽인 최초의 작품 정도로 생각했다. 너무나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 그것이 사실에 근거를 두었다고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이 여행기를 본 유럽의 지식인들은 거의 모두가 '허풍쟁이 소설'로 평했다. 그래서 그들은 핀투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였고 그로 인해 터무니없는 허풍을 뜻하는 '핀투레스크'나 '멘닥스 핀투' 같은 조어도 만들어 냈다.

이는 마르코 폴로(1254?∼1324)가 동방 여행기를 전했을 때 당대의 지식인들이 그에게 '허풍쟁이 대왕'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던 것을 감안한다면 핀투가 받은 그런 취급은 당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이

허풍쟁이의 말은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지금에 와서는 마르코 폴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바스코 다 가마처럼 동방 여행기를 남겼거나 인도·북미 대륙을 서양인의 눈으로 최초로 발견한 탐험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백과사전에 4대 탐험가 중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리기까지 하고 있다.

어쨌든 이 책은 핀투가 죽은 뒤 30년 후에 정식 출간되어 그가 살아 생전 이들이 쏘아댄 조롱의 화살을 직접 맞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하늘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 보며 세상 물정 모르는 백면서생(白面書生)의 논쟁거리로 치부하지 않았는가 싶다.

그러나 핀투여행기를 읽다 보면 한편으로는 그런 당시대의 비난에 공감이 가는 부분도 없지 않다. 사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극적인 체험과 이국적인 에피소드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핀투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이 겪은 역경과 고난으로 에워싸인 포르투갈에서의 어린 시절, 불행에서 도망치기 위해 12세 때 항구에 정박해 있던 범선에 무작정 몸을 싣는 것으로 방랑의 기록을 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 아라비아, 인도, 베트남, 중국, 일본…수십 개국에 이르는 그의 여정은 그러나 순탄치만은 않았다.

1540년 인도차이나와 남중국해에서 해적질을 했고, 1541년 중국에 가서는 진시황릉을 도굴하다가 잡혀 엄지손가락이 잘린 채 만리장성 강제노동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난파된 뗏목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육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기도 한다. 무임소 대사부터 죄수에 이르기까지 극에서 극에 이르는 신분 변화를 경험하고 17번에 걸쳐 노예가 되며 13번이나 죄수가 된다.

그러한 그의 여정은 우리의 역사와 무관치 않다. 핀투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땅에 피를 뿌렸던 조총을 일본에 전수했던 인물이다. 프란치스코 사비에르 신부와 함께 일본에 가톨릭을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핀투는 지식이나 종교, 사상적 신념 같은 것은 희박해 보인다. 그의 어투는 단순하고 거칠다. 그는 줄곧 솔직하고 단순한 구어체로 서술하고 있다. 당시 유행하던 문학적 수사와 기교를 전혀 부리지 않은 이런 정직한 문장은 당대의 저술가들로부터 다시 한 번 핀투를 경멸의 대상에 올려놓는 명분을 제공했다.

하지만 핀투의 '편력기'를 꼼꼼하게 읽어보면 저자가 16세기 포르투갈의 모든 정치 및 종교 제도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게다가 포르투갈의 해외 왕국을 정신적으로 지탱하고 있던 십자군 이념을 철저하게 비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래 잊혀졌던 보물선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또는 망각 속으로 사라졌던 고대문명이 드러나는 것처럼 우리는 핀투의 모험을 통해 400년 전의 역사와 인간을 들여다보게 된다. 16세기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나 인간이 갖고 있는 호기심, 욕망, 문화적 편견 등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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