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미 FTA 협상에 따른 반응들

"공산품 더 팔려고 농업시장 내주나"

지난 2일 한국과 미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면서 축산농가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미 미 무역대표부(USTR)와 각 산업계가 '예외없는 포괄적 협정'을 강조하면서 어느 해보다 산업의 각 분야에 대한 개방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갈 곳이 없어진 이들 축산농민들 사이에서는 한숨소리만 흘러나오고 있다.

◆FTA란?

흔히 FTA(Free Trade Agreement)로 불리는 자유무역협정은 국가 상호 간 무역증진을 위해 물자나 서비스 이동을 자유화시키는 협정으로, 국가 간 각종 무역장벽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러나 강대국과 약소국 간에 협정이 체결될 경우 각종 수입품이 싼 가격으로 범람할 수밖에 없어 경쟁력이 없는 약소국의 기반사업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그러나 강대국은 높은 무역관세율 보복 등으로 압박을 하기 때문에 대미 수출이 절대적인 몫을 차지하고 있는 수출구조상 미국과의 협상을 무조건 피할 수만도 없는 입장이다.

이달 초 시작된 미국과의 FTA 협상은 산업 전 분야에 걸쳐 있지만 특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농·축산업 분야가 결정적인 피해를 입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협상은 어떻게 되나?

협상 개시는 지난 2일 이뤄졌지만 미국 내 일정에 따라 본격적인 협상은 5월쯤이 유력하다. 이는 미국 의회가 행정부에 위임한 무역협상시한(신속협상권한)이 내년 7월 1일로 끝나고 미국의 경우 타국과의 FTA 협상 개시 결정이 나면 의회가 3개월간 사전검토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정으로 진행되면 내년 초에는 어떤 형태든 협상이 체결될 것으로 보이며 협상이 발효되면 앞으로 10년간 단계적으로 양국 간 교역품목의 90% 이상을 무관세화해야 한다. 미국의 전례를 볼 때 협상분야는 농업, 섬유, 금융, 지적재산권, 서비스, 통신 등 20여 개 분야로 사실상 모든 분야에 걸쳐 개방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고 섬유, 자동차, 전기, 전자 등 업종의 해외진출이 크게 늘 것으로 보이지만 경쟁력이 낮은 농·축산업의 피해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절망뿐인 축산농가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쌀을 제외한 농축산물의 관세감축 시나리오에 따라 국내 농업생산이 1조1천500억~2조2천800억 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품목별 감소액은 곡물류 1천661억 원, 과일·채소·견과류 4천758억 원, 축산물 8천792억 원, 우유·낙농 3천131억 원 등으로 축산물 분야의 농업생산 감소가 가장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양허품목에서 쌀은 제외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해 농업분야 피해액의 40% 가까이 축산물시장에서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10마리 안팎의 소를 키우고 있는 영세 축산농들에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FTA 협상개시 소식은 감당하기 힘든 직격탄으로 큰 충격이 되고 있다.

상주 공성면 옥산리 성산농장 김정호(54) 씨는 "미국산 쇠고기가 몰려오고 FTA가 체결되면 국내 축산시장을 미국에 내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공산품 더 팔려고 농업시장을 외국에 내주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지 막막할 뿐이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국한우협회 경주지부장인 김규현(49) 씨는 "우리와 사육조건이 비슷한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될 경우 육질이 좋아 한우로 둔갑돼 판매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이 경우 한우 가격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국한우협회 남호경 회장은 "우리가 FTA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부득이 한-미 간 FTA가 국익을 위해 불가피하다면 농업 희생을 전제로 하는 협상이니 만큼 협상으로 이득을 보는 산업에서 기금 등을 조성, 농업회생에 쓰일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등의 선대책이 마련된 후 협상 추진이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밀려 들어올 경우 돼지고기와 닭·오리고기 등도 소비 감소로 가격이 떨어지고 축산 농가의 폐업으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우려돼 양돈·양계농가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양계업자 김성희(63)씨는 "축산업 중에서 지금까지 조류독감이다 뭐다 해서 가장 큰 타격을 본 양계업이 또 한차례 홍역을 치를 것"이라며 "무턱대고 시장의 문을 열게 아니라 국내 농축산업의 살 방도를 마련해 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정부의 대책은?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FTA 협상 시작에 대해 "농업부문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대한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연말까지 농업경쟁력 강화대책을 전면 재검토, 보완하겠다"며 "정부는 농민·농촌·농업체제 정책에 총 119조 원을 투입하는 프로젝트를 마련해 추진 중이나 상황 변경에 맞춰 보완 또는 변경할 사안을 다시 중점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직 구체적인 지원대책이 나오지는 않고 있지만 우선 2010년까지 1조2천억 원 규모로 진행 중인 한-칠레 FTA 이행지원 기금과 같은 형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기금의 경우 포도나 복숭아 등 칠레산 수입으로 피해를 보게 된 농가가 재배를 포기할 경우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돼있다.

반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낙농육우협회 등 각종 농민단체는 강력한 반발을 선언했다. 이들은 "한미 FTA는 농업에 대한 사형선고"라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FTA 추진을 강행하면 강력하게 투쟁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들은 "정부가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은 철저히 배제한 채 요식적인 절차만 밟고 있다"고 주장하고 농민들의 협상 참여권 보장과 대책 마련, 통상협상의 민주적인 절차를 촉구했다.

사회2부

사진: 한미 FTA협상이 개시된 가운데 축산농가의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다. 사진은 영주 소시장에 출하한 축산농민들이 거래를 하고 있다. 영주·마경대 기자 kdm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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