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에코토피아'가 선택한 에너지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칼렌바크는 생태학적으로 이상적인 미래의 지구 모습을 그린 소설 '에코토피아(Ecotopia)'를 1970년에 발표했다. 생태를 의미하는 에콜로지와 이상향을 의미하는 유토피아를 합성한 '에코토피아'는 인간과 환경이 완벽하게 조화된 생태학적 이상향을 창조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일부 지역이 연방으로부터 탈퇴해 수립한 독립국가의 이름이다. 에코토피아는 미국과 적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지구상의 어떤 나라와도 교류하지 않고 20년 가까이 고립정책을 고수한다. 급진적인 환경정책을 실현하면서 자연으로 환원될 수 없는 물건은 일절 생산하지 않는다. 에코토피아에서는 식물에서 추출한 플라스틱을 사용해 집도 만들고 학교도 세운다. 화학비료나 살충제 등을 전혀 쓰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전기로 움직이는 전차와 전기자동차, 그리고 자전거를 이용한다. 공장도 모두 전기를 이용해 제품을 만들고, 생산된 물건도 전기로 작동되는 컨베이어로 실어 나른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전력이 소모된다.

문제는 그 많은 전기를 어떤 에너지원을 이용해 만드는가에 있었다. 석유나 석탄, 가스를 이용하는 화력발전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원자력발전은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과 방사성폐기물이 발생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태양광 발전과 같은 재생에너지로는 필요한 만큼의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없었다.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원하는 만큼의 전기를 만들 수 있는 완벽한 에너지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차선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상적인 환경제일주의 국가인 에코토피아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에너지원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였다.

에코토피아의 에너지 문제는 비단 소설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니다. 지금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에너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국민이 잘 살기 위해서는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하고,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이 필요하다. 그러나 45억 년에 걸쳐 만들어진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는 이미 매장량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고, 그나마도 매장량이 중동 등 일부 지역에만 편중돼 공급 부족과 가격 폭등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게다가 석유나 석탄을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등 오염물질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밝혀지면서 국제적으로 화석연료의 사용 규제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에너지 해결책으로 각광받고 있는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도 실상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적절한 풍속이나 일사량 등 자연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전기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설비 이용률도 턱없이 낮아 연중 전력생산이 가능한 날이 얼마 되지도 않는다. 깨끗한 에너지원이라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전기 저장을 위한 배터리 사용 등 환경오염 문제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에너지원을 선택해야 하는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주면서 환경에 미치는 부담도 최소가 되는 에너지원은 어떤 것인가. 현실적으로 이에 가장 근접한 에너지원은 아직까지는 원자력밖에는 없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과 함께 한동안 원전 축소 내지는 폐지 움직임을 보여 왔던 세계가 다시 원자력발전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부시 대통령이 30년간 중단됐던 원전 건설을 2010년까지 재개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올해 국정연설에서도 "탈석유'탈중동"을 부르짖으며 원전건설 재개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산유국인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도 지난해 말 "원전 건설 재개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반(反)원전 정책을 주도해 온 독일도 최근 원전 폐쇄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고, 원자력 의존도가 세계 최고인 프랑스도 제3세대 원자로를 새로 건설하기로 했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하고 있는 중국, 인도도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은 필요한 에너지의 거의 전부를 수입해 쓰고 있는 대표적인 자원 빈국이다. 2004년도 에너지 수입액은 무려 469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총 수입액의 22% 수준이며, 우리의 최대 수출품목인 반도체 수출액 265억 달러와 자동차 수출액 266억 달러를 합한 금액에 버금가는 엄청난 액수이다. 이러한 외화 유출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두뇌와 기술만 있으면 소량의 우라늄으로 대량의 전기를 값싸게 만들 수 있는 원자력발전의 비중을 적정한 수준까지 높여 나가야 한다. 인간과 환경의 완벽한 조화를 꿈꾸는 '에코토피아'가 국가 주력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을 선택한 점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형준 한국수력원자력㈜ 원자력환경기술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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