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가끔 정신과 의사로 사는 것이 고독할 때가 있다. 오랜만에 이뤄진 동창 모임에서 정신과 의사 옆에 앉으면 분석당할지 모른다는 농담을 하며 은근히 꺼리는 동창을 볼 때, 우연히 길거리에서 낯익은 환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민망할 정도로 환자가 외면해 버릴 때가 그렇다. 정신과 의사를 아는 척이라도 했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 찍힐까 두려운 모양이다. 정신과 진료를 권하는 것조차 매우 조심스럽다고 말하는 의사들도 많다. 정신과 진료를 정신병자 혹은 인격장애자 등과 같은 뜻으로 여기는 사회적 편견의 단면이다.

진료실에 들어선 40대 남자는 정신과 진료는 평생 처음 받아 보며 자신은 이런 곳에 올 사람이 아닌데 세상이 험난해 할 수 없이 오게 되었다는 변명부터 한다. 한참 상담을 끝내고 일어서던 남자는 "정신과 의사도 보통 사람이네. 마음을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며 가볍게 진료실을 나선다. 그가 앉았던 빈 의자를 바라보며 '세상과의 지난한 싸움에서 그는 얼마나 힘들고 자존심이 상했을까'라는 공감, '내가 보통 사람으로 보이기는 하는구나'라는 안도감과 더불어 높은 정신과 문턱을 새삼 실감한다.

그러면 영화에서는 정신과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영화의 장르적 속성상 정신병이나 인격장애 등 드라마틱한 행동 특성을 보이는 인물을 등장시켜 대중적 관심을 끄는 경우가 많았다.

정신과 의사라는 역할이 처음 영화에 등장한 것은 1906년이다. 이후 지금까지 여러 이미지로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1950년대 중반까지 정신과 의사를 정신 감정의나 현인 같은 역할로, 1960년대 중반까지는 인정많고 유능한 이미지로 그렸다.

그러다 1960년대 말 미국에서 반정신과 운동(anti-psychiatry movement)이 성행하여 정신의학의 연구와 교육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대폭 감소했다. 주립병원은 대형화되어 환자 치료보다는 수용 위주로 기능이 바뀌면서 정신과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제작되었다. 뻐꾸기 둥지는 미국의 속어로 정신병원을 뜻한다.

영화는 1963년 미국 오레곤 주립 정신병원이 배경이다. 이중, 삼중 잠금장치가 된 폐쇄 병동, 엄격한 원칙주의자인 수간호사, 건장한 체구의 보호사를 등장시켜 정신병원의 단절성과 비인간적 분위기를 부각시킨다. 온종일 한 자세로 있는 긴장형 정신분열병, 아내의 불륜에 대한 망상을 가진 질투형 망상장애 등 다양한 환자들 속에 한 사람의 이방인이 있다. 바로 백치 취급을 받는 인디언 추장이다. 자유분방한 맥머피의 등장으로 내적 변화를 일으킨 추장이 병원을 탈출하면서 막을 내린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제목은 인디언 전래동요의 한 구절이다. 백인에게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감금된 인디언의 가련한 모습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 정신병 환자들에 대한 은유이기도 했다.

현재는 정신보건법이 제정되어 입원절차나 환자의 권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여 인도적인 분위기에서 최선의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많은 환자들이 인간답게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편견은 은폐와 무지 속에서 싹튼다. 스트레스로 찌든 몸과 마음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하게 상담하고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의 조성이 시급하다. 나 또한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살아갈 텐데 지친 이들이 와서 쉬어갈 수 있는 그런 정신과 의사가 되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겠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