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사는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묻는다. "도서관에 갈 때 왜 한짐 가득 책을 싸들고 가느냐"고. "도서관에 책이 많이 있는데, 그것이 모자라느냐"고 또 묻는다.
도서관 문화를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구의 지적 수준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의 바람도 조금씩 불고 있다. 동네마다 도서관을 만들어보자는 것. 이제는 제대로 이용해보자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지금 도서관에선= 지난 2일 오후 2시 대구 중앙도서관. 2천 석이 넘는 열람석 가운데 책을 읽는 공간은 전체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100~200석 규모로 칸막이 좌석을 설치해 놓은 3, 4층 열람실 6곳 모두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독서실'처럼 이용되기 때문이다. 이 열람실들은 앉을 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운 실정. '빵빵한' 가방을 멘 젊은 사람들이 빈 자리를 찾아 아래층과 윗층을 여러번 오가는 장면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고시(古詩)를 읽기 위해 자주 도서관을 찾는다는 한 퇴직교사(70)는 앉을 자리가 없다고 불평했다. 그는 "도서관은 책을 찾아 읽는 곳인데…"라며 혀를 찼다.
도서 및 책을 열람하는 자료실 공간 구성도 어긋난 도서관 문화를 부추기고 있었다. 중앙도서관 1층 문학자료실의 좌석수는 겨우 40석. 같은 층 섬유정보실은 고작 8석이 전부. 50석 남짓한 2층 종합자료실 좌석 일부는 자기 책을 갖고 온 사람들이 차지하고 앉아 영어공부에 열심이었다.
같은날 중앙도서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한 대형서점. 1~3층까지 손님들이 가득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3층 키즈 가든. 유아·어린이 전문 코너 한가운데 정원 모양의 푹신한 의자를 설치해 놓은 이곳엔 15명 남짓의 어린이들과 주부들이 책을 읽고, 읽어 주고 있었다. 주부 강경미(33·수성구 파동) 씨는 "도서관엔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이미 빌려가고 없는 책들이 너무 많다"며 "신간은 아예 구경조차 어렵다"고 했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2004년 대구도서관들의 인구 1인당 자료구입비는 445원으로 서울(444.4원)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광주 757.5원 ▷대전 739.8원 ▷인천 705.2원 ▷부산 668.1원과 비교했을 때 200~300원이나 모자란다. 2004년 한 해 대구 13개 도서관들이 새로 구입한 도서는 14만208권. 11개 도서관에서 22만8천553권을 구입한 인천은 물론 부산 24만9천881권 서울 40만2천914권과 비교해 턱없이 모자라는 수치다.
◆운영시스템도 문제= 대구 12개 공공도서관은 대구시가 지은 뒤 대구시교육청에 운영을 위탁했다. 전문가들은 대구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 대구시와 교육청의 '도서관 정책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대구대 윤희윤(문헌정보학 전공) 교수는 "인구 25만 명의 남구에 있는 남부도서관은 지방부이사관(3급)이, 인구 59만의 달서구에 있는 '두류도서관'은 지방사서사무관(5급)이 관장으로 있다"며 "교육청이 도서관 운영을 엉망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2004년 기준으로 두류도서관의 도서자료는 20만373권, 남부도서관은 13만7천5권이지만 직원수는 남부(33명)가 두류(30명)보다 더 많다. 1981년 지어진 두류도서관 부지는 2천500평인데 반해 남부는 배가 넘는 5천500평에 이르고 있다. 윤 교수는 "1구 1도서관 원칙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지고 인구도 많지 않은 앞산에 덩치만 큰 남부도서관을 짓고 조직까지 확대한 대구시와 대구교육청을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도서관 관장 자리에 비전문가를 앉힌 것도 문제.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은 사서직 출신 전문 관장을 명시하고 있지만 대구 12개 공공도서관 중 규모가 큰 4곳엔 지방부이사관이 관장으로 있다.
이 같은 구조는 재정 운영상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4년 기준으로 대구 도서관에 들어간 재정은 179억 원. 이 가운데 자료구입비 비중은 6.3%에 그쳐 전국 6대 도시 중 꼴찌다. 대구는 도서자료 구입에는 제일 인색하지만 인건비 및 기타 운영비 비중은 최고로 높다.윤 교수는 "OECD 국가의 평균 자료구입비가 15% 수준임을 감안할 때 대구의 열악한 현실은 참으로 부끄럽다"고 안타까워했다.
◆변화의 바람= 대구의 도서관 숫자가 올해부터 크게 늘어난다. 달서구 도원도서관과 상인 어린이도서관이 다음달 준공, 지역 최초의 구립도서관이 올해만 2개나 만들어지는 것.
현재 설립을 추진하거나 추진 중인 구립도서관도 모두 6개에 이른다. 수성구청은 지난해 11월 범어네거리 구민도서관 설립(2008년 개관 목표) 협약식을 체결했고, 올 하반기 수립하는 10개년 장기 도시계획에 시지, 지산범물 도서관을 추가 건립해 역내 도서관 삼각축을 확보하는 기본안을 세워두고 있다. 북구청도 읍내동 일원에 2008년 개관을 목표로 올 5월 '구수산 도서관'을 착공할 계획.
그러나 운영비 문제는 남아 있다. 부자동네 서울조차 구립도서관 재정 확보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4년 기준으로 서울 22개 공립 도서관 평균 재정은 16억9천만 원선인데 반해 16개 구립도서관은 8억4천만 원선으로 공립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부산, 경기 안산, 제주도 등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잇따라 대구 또한 짓기만 하고 운영 재정 확보에 실패하면 도서관 슬럼화가 불가피하다. 또 수성구, 달서구에만 도서관이 몰려 다른 지역 주민들의 '정보 소외감'을 부추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구·군청이나 교육청 같은 도서관 운영주체들이 매년 일정 규모 이상의 자료구입비를 반드시 지원하도록 법제화 해 도서관이 본래의 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대규모 아파트 단지, 주택밀집가에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1천 평 내외의 소규모 도서관을 개관, 기존 도서관과의 상생을 꾀하거나 이용도가 낮은 초·중·고교 도서관들을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문제도 심도있게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탄핵 반대, 대통령을 지키자"…거리 정치 나선 2030세대 눈길
젊은 보수들, 왜 광장으로 나섰나…전문가 분석은?
민주, '尹 40%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에 "고발 추진"
윤 대통령 지지율 40%에 "자유민주주의자의 염원" JK 김동욱 발언
"尹 영장재집행 막자" 與 의원들 새벽부터 관저 앞 집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