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단견과 안목

올 봄에는 지인 부부 몇 팀과 충북 옥천을 여행키로 했다. 그곳은 '향수'를 남긴 시인 정지용의 고향으로, 생가에서는 매년 정지용 문학제가 열린다. 이런 기대로 예년과 다른 한파도 싫지 않다. 추위가 풀리면, 문화 답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 덕분이다. 일반인들의 여행이나 관광은 대다수 이런 형태이다. 돈과 시간을 투자한 여행에서 세월을 넘어서 뭔가 느끼고 세파에 시달린 영혼을 씻는 문화 여행을 원한다.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세계적인 포털 사이트들은 한국 내 관광지로 대구를 꼽지 않는다. 서울 부산 경주를 추천하고, 대구는 볼거리가 없다고 혹평한다. 볼거리가 없다는 지적은 대구가 '무(無) 기념관의 도시'라는 사실의 다른 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구는 근대화 이후 한국의 정신사'문화사를 주도한 인물을 수없이 배출했지만 그들을 보듬어 내는 기념관 같은 역사적 볼거리는 거의 없다.

◇대구는 우여곡절 끝에 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을 보존하게 됐다. 개화 이후 대구가 배출한 역사적 인물을 기리는 공간을 처음으로 확보한 의미는 크다. 그러나 이 일의 추진 과정을 되돌아보면 두 가지 간과해선 안 될 일이 있다.

◇하나는 행정의 적시성이다. 처음 본사가 상화 고택을 보존하자는 주장을 펼 때만 해도 고택 매입 비용은 3억1천만 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매입 적기를 놓치는 바람에 고택 값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도시 발전을 견인하는 행정이라면 언론'시민단체'전문가 집단이 제기하는 이슈를 제때 채택, 적기에 정책을 집행해야 효율성이 돋보인다. 도시가 상생 기운도 지닌다.

◇또 하나는 행정의 안목이다. 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 고택을 보존키로 한 데 대해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다. 그러나 상화와 서상돈 고택만 보존 대상인가. 바로 옆이 독립운동가 이상정 장군 고택, 그 옆은 초대 대구상공회의소를 이끈 서예가 회산 박기돈의 집이다. 상화 맏형인 이상정은 전각예술의 대가이기도 한데, 고택엔 그가 피신하던 굴까지 남아 있다. 회산은 올해 100주년을 맞은 대구상의가 기려야 마땅할 인물이다. 한울타리에 있는데도 상화와 서상돈 고택만 보존하고 이상정과 회산 고택은 방치하는 단견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최미화 논설위원 magohalm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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